최근 한 행사장에서 옆에 앉은 남아프리카공화국 대사는 한국의 장관·국회의원 등 고위공직자 중 여성의 비율이 얼마나 되냐고 물어왔다. 얼마 되지 않을 거라고 얼버무리면서 남아공 사정을 물었더니 남아공은 고위공직자에서 여성의 비율이 40%를 넘고 주요20개국(G20) 중에서도 3위라는 것이 아닌가. 아무래도 우리 형편도 알아둬야 할 것 같아 조사해보니 G20에서 1위는 캐나다로 46.4%이고 꼴찌는 사우디아라비아로 1.3%이며 한국은 4.7%로 끝에서 세 번째였다. 유럽연합(EU) 28개국 평균은 40%, G20 평균이 26.4%, 심지어 중국도 12.6%였다.
외교 분야의 경우에도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대사 중 여성 대사의 비율은 15%이며 캐나다 외교부의 경우는 여성 대사가 43%라고 한다. 한국의 경우 대사 114명 중 여성대사는 1명뿐이니 1%가 못 된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지난 2015년 집권하면서 캐나다 역사상 최초로 양성평등 내각(여성 15명, 남성 15명)을 구성했는데 그 이유를 묻자 “지금은 2015년이잖아요(당연한 거 아닌가요)”라는 간단명료한 대답으로 일침을 놓은 바 있다.
캐나다 공무원의 최고 수장인 마이클 워닉 추밀원 사무처장은 우리 국경일 행사에 한국에서 입양한 딸을 데리고 와 축사를 해주기도 했는데 그는 “캐나다 고위공직자의 남녀 비율이 50대50으로 될 날이 머지않았다”며 자신 있게 예견했다. 워닉 사무처장은 캐나다 공직사회는 이제 남녀의 비율을 넘어 직장문화를 완전히 바꾸는 단계에 있다면서 ‘남자가 나서 모두 설명하고(mansplaining)’ ‘남자가 중간에 말 끊고(manterruption)’ 하는 식의 과거 회의 방식을 바꾸는 것, 직장에 은근히 녹아 있는 남녀 차별을 없애는 노력 등을 예로 들었다.
최근 캐나다의 트뤼도 정부는 외교·안보 정책에서도 양성평등을 추진하고 있는데 올 6월 최초로 ‘페미니스트 국제원조정책’을 수립했고 더 나아가 ‘여성, 평화와 안보를 위한 유엔 안보리 결의’ 이행을 위해 11월 초 ‘페미니스트 외교정책’ 추진을 발표했다.
페미니스트 국제원조정책의 경우 빈곤을 가장 효율적으로 퇴치하기 위해서는 여성과 소녀의 역량을 강화하고 이들의 경제 참여를 확대하는 것이 첩경이라 보고 이를 위해 오는 2022년까지 캐나다 양자 국제원조 예산의 95%를 관련 사업에 집중 배정할 계획이다. 최근 유엔 연구에서도 여성이 경제활동에 동등하게 참여할 경우 10년 안에 세계 국내총생산(GDP)이 26%까지 증가할 것이라는 결과가 있다.
캐나다 페미니스트 외교정책의 핵심은 △양성평등, 인권의 완전한 향유 △무력보다는 대화를 통한 분쟁 예방 △평화 구축 및 평화 유지 과정에 여성의 동등한 참여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2026년까지 여군의 비율을 현재의 15%에서 25%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캐나다는 국내적으로 고용평등법을 통해 연방공무원 중 여성의 비율을 매년 하원에 보고하도록 규정하는 등 양성평등을 법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도 최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 재협상을 계기로 ‘양성평등의 장(章)’을 추가하고자 하며 내년 주요7개국(G7) 의장국으로서 양성평등을 4대 주요 의제의 하나로 다룰 계획이다.
최근 우리 정부도 여성 장관의 비율을 역대 최고 수준인 30%로 높이고 여성 기업인 지원을 위한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하는 등 여성의 역량 강화에 최우선 정책순위를 부여하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최근 한 국제 콘퍼런스에서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높일 경우 GDP가 10% 증가할 것”이라고 지적한 바와 같이 한국에서 여성의 역량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크나 우리 사회가 진정한 양성평등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더 많은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고 무엇보다 인식 변화가 절실하다고 본다. 트뤼도 총리가 말했듯이 ‘왜 양성평등인가요’라는 질문에 “그야 2017년이니까요”라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대답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우리 국민들에게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한다.
신맹호 주 캐나다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