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제조업계의 ‘살아 있는 전설’. 업계에서 이경수 코스맥스 회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회장은 46세인 지난 1992년 탄탄대로를 걷던 직장을 뛰쳐나와 임대공장에서 화장품 생산을 시작해 20년 만에 글로벌 1위 제조업자개발생산(ODM) 회사를 일궈냈다.
이달 14일 찾은 경기도 판교의 코스맥스 본사에서는 2017년 신입직원 공개채용 면접이 한창이었다. 면접을 마친 이 회장은 “회사가 성장한 만큼 좋은 인재들이 많이 지원하고 있다”며 “표정이 밝아 긍정적인 기운이 보이는 지원자, 논리정연하고 정직해 보이는 사람에게 높은 점수를 줬다(웃음)”고 말했다. 코스맥스는 이번 공채에서 약 50여명의 신입직원을 채용한다.
첫 번째 질문으로 ‘화장품 산업에 발을 들여놓은 동기’를 물었다. 그는 ‘사계절 이론’으로 답했다. 이 회장은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한데 이것은 화장품 사업에 두 가지 장점이 있다. 우선 각 계절에 최적화된 화장품을 만들 수 있는데 여름을 연구해서 여름용 화장품을 개발하고 이것을 열대지방에 판매한다. 또 겨울에는 겨울을 공부해서 시베리아에 가서도 화장품을 팔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화장품 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K뷰티’라는 고유명사로 통하는 배경 중 하나가 유행 창출 능력이다. 그만큼 신제품 개발 주기가 빠르다. 이 회장은 이 역시 사계절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3개월마다 계절이 바뀌니까 신제품 주기가 빨라진다”며 “계절이 화장품 생산기업에 주기적인 자극을 주는 셈인데 이런 면에서 볼 때 화장품은 한국이라는 나라에 딱 맞는 사업”이라고 분석했다.
성공한 직장인으로 승승장구하던 그가 창업에 나선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이 회장은 서울대 약대를 졸업한 뒤 동아제약 마케팅팀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광고대행사 오리콤을 거쳐 대웅제약 마케팅 담당 전무를 끝으로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이 회장은 “원자핵을 둘러싸고 전자가 돌고 태양을 중심으로 태양계가 돌듯 모든 사람들에게는 기회가 돌고 있다”며 “적당한 타이밍이 오면 그 기회를 포착해야 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렇다고 직장을 관두라는 것이 아니다. 직장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것, 그게 창업의 준비 과정”이라고 덧붙였다.
그에게는 미국에 사는 매형이 한국을 방문해 창업을 권유했던 것이 ‘찾아온 기회’였다. 이 회장은 “한국에서 사업을 하고 싶었던 매형이 제 직장, 내 경력을 인정해줬는지 ‘자기 일을 하라’며 창업을 권했다”며 “큰 고민 없이 승낙했는데 결과적으로 매형이 나를 준비된 사람으로 봐준 것이었다”고 회상했다.
창업을 결심한 그는 제약사 출신답게 제약 사업을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당시 제약 산업을 보니 신약다운 신약은 개발하지 않고 동일한 성분의 약을 만들어 마케팅으로만 승부를 거는 관행이 고착화돼 있었다. 그는 이 시장에 들어가 치킨싸움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을 찾았는데 그것이 바로 화장품 전문 생산, ODM이다.
이 회장은 “일본·유럽 시장조사를 해보니 화장품 산업이 생산과 판매가 분리돼 있었다”며 “우리나라 화장품 산업도 이 길을 똑같이 걸을 것이라는 자기 확신이 생겼다”고 돌아봤다. 때마침 화장품 생산공장 하나가 매물로 나와 있었고 그 공장을 임대해서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 회장은 창업하자마자 1,000명의 잠재 고객들에게 엽서를 보냈다. 물론 답장이 돌아온다는 기약이 없는 일방적 구애였다. 이 엽서는 회장 집무실 한편 액자에 아직도 걸려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첫 주문이 들어왔고 코스맥스의 첫 번째 생산품인 나드리화장품의 ‘이노센스 트윈케이크’가 나왔다.
그는 “임대공장을 할 때만 해도 꿈을 갖는다는 것은 사치스러운 이야기였다”며 “임대공장에서 벗어나 3년 만에 자기 소유 공장을 가동했는데 이때 3년마다 이런 공장을 하나씩 갖게 되면 좋겠다는 꿈을 가졌다”고 미소를 지었다.
그의 꿈은 현실에서 매우 빠른 속도로 이뤄졌다. 코스맥스는 현재 중국·인도네시아·미국 등에 현지 생산시설을 갖추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내 3위 생산기업인 누월드를 5,000만달러에 인수하는 대형 인수합병(M&A)을 성사시켰다.
그가 가장 애착을 갖는 곳은 어디일까. 이 회장은 “지금까지는 중국, 앞으로는 미국”이라고 답했다. 중국은 연매출 300억원에 불과하던 강소기업 코스맥스를 글로벌 ODM 기업으로 성장시킨 곳이다. 그는 “중국은 정책이 쉽게 바뀌고 당시만 해도 한국에 대한 인식이 좋지도 않았다”며 “처음에 중국 시장에 진입할 때 많은 사람들이 말렸는데 거대한 대륙 시장을 놓칠 수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판단이 서자 이 회장은 중국에 대규모 투자를 집행했다. 모든 공장을 신축했고 주재원도 가장 많이 보냈다. 중국 생산공장 내 시설반장들에게조차 정성을 다해 대했다. 그렇게 10년간 중국 시장에 전념했고 지금의 코스맥스로 성장하는 토대가 됐다.
그는 “앞으로는 미국 시장에 주력할 계획”이라며 “중국이 함께 커가는 시장이었다면 미국은 이미 커 있는 시장이어서 성장 속도를 높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현재 코스맥스는 ‘헬스&뷰티 시장 강화’라는 목표를 설정해둔 상태다. 다분히 중국 시장을 염두에 둔 전략이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중국 사람들이 한국 화장품을 좋아하는 것은 지리적으로 가까워 생활문화가 엇비슷하고 중국보다 기후나 풍토가 더 깨끗하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란다. 이 회장은 “동물은 주변에서 나오는 식재료를 먹고 건강을 유지한다”며 “중국 소비자들은 한국산 식재료를 매우 신뢰하는데 중국에서의 건강 기능성 식품 판매는 코스맥스의 또 다른 성장의 축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코스맥스는 전 세계 많은 화장품 ODM 기업 중에서도 연구개발(R&D) 능력만큼은 최상위급으로 평가된다. 이 회장은 회사의 가장 큰 자랑거리로 주저 없이 R&D 능력을 꼽는다. 코스맥스의 국내 인력 900여명 중 R&D 인력은 30%인 300여명에 달한다. 이들은 본사 연구혁신(R&I)센터에 모여 있는데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들이 생산위탁을 위해 방문할 때마다 찬사가 끊이지 않는다.
이 회장은 “코스맥스는 생산 전문기업이어서 첫째도 품질, 둘째도 품질이 될 수밖에 없다”며 “소비자들이 제품을 구매할 때 초도주문은 마케팅 영향을 받더라도 재구매는 품질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이어 “우리 연구소에 가보면 실험설비 옆에 책상이 4개 붙어 있는데 팀장과 팀원이 마주 보면서 대화를 할 수 있다”며 “설비가 바로 옆에 있어서 아이디어가 바로 실험으로 이어지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예정된 30분의 인터뷰 시간이 다 끝나갔다. 이번 인터뷰는 신입사원 면접 일정 탓에 점심시간 막간을 활용해 진행됐다. 마지막으로 코스맥스 사업의 본질과 맞닿아 있는 질문을 던졌다. 글로벌 산업 구조는 생산과 판매가 분리되는, 이른바 생산의 외주화 현상이 확대되고 있다. 코스맥스는 이 같은 변화의 흐름 속에서 기회를 포착한 기업이다. 이 회장은 이 도도한 흐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매우 중요한 질문이라고 답한 이 회장은 “생산의 외주화, 또 다른 말로 아웃소싱의 일상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온라인 판매 채널의 발달”이라며 “과거에는 한 기업이 제품 생산·유통 등 모든 업무를 전담했는데 온라인 채널이 발달하면서 판매만 취급하는 회사들이 생겨났고 그 반대편에 우리 같은 생산 전문회사가 있는 것”이라고 설파했다.
끝으로 이 회장이 덧붙였다. “앞으로도 유통 혁신은 계속될 것이고 따라서 생산의 외주화도 고착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코스맥스의 사업은 지금보다 더 커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