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고등학교 체육관 외벽은 비스듬하게 나 있는 틈을 따라 둘로 나뉜 모습이었다. 갈라진 벽 사이로 고3 수험생들의 한숨이 흘러나오는 듯했다. 수능 고시장인 포항고는 17일 오전에도 학생과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했다. 위험을 알리는 통제선 안쪽으로 경찰과 교육청 관계자, 안전 진단 전문가만 드나들었다. 잠시 음료수를 마시러 나온 한 교사는 “체육관 건물이 좀 심하게 금이 갔고 교실 쪽은 그나마 덜하다”고 담담히 말했다.
학교 건물 외벽에 깊게 드리운 지진의 상처만큼 학부모와 수험생의 불안도 깊었다. 고3 수험생을 둔 이형선(51)씨는 “애가 시험 보는 학교가 포항고인데 벽에 금이 가고 교실에 선풍기가 떨어져 있는 사진을 봤다”며 “애도 사진을 본 뒤 (공부에) 집중을 못 하는 것 같다”고 걱정했다. 또 다른 학부모는 “딸이 차분히 마음을 정리하고 시험에만 집중했으면 좋겠는데 어디서 시험을 보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걱정만 쌓인다”며 속상해했다.
포항 지역 고사장 12개를 대상으로 실시한 긴급 안전 진단에서 포항고와 포항여고·장성고·대동고 등 4개 학교는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들 학교에서 수능을 치를 예정이었던 수험생들은 이날도 어디서 시험을 볼지 모른 채 기다려야만 했다.
이재민들도 힘겨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아파트가 기울어지거나 건물 일부가 무너져 들어가지 못하는 이재민들은 임시 대피소에서 삼삼오오 모여 걱정스러운 심정을 나눴다. 수용 공간은 부족한데 이재민이 점점 늘어나면서 ‘객지 생활’의 어려움도 더욱 커지고 있다. 얇은 스티로폼이나 종이상자만 깔고 잠을 청하다 보니 추위에 떠는 이재민들도 많다. 이재민 A씨는 “잠이라도 제대로 잘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일부 이재민들은 임시 대피소 생활을 포기하고 다른 지역 친지의 집으로 향하기도 했다. 흥해실내체육관에서 만난 고3 수험생 이지선(18)양은 “문제 풀 때 집중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조그만 움직임만 있어도 또 지진이 난 게 아닌가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고 말했다.
포항시내 일대는 적막 그 자체다. 포항시 북구 주택가 상당수는 주민들이 빠져나가 인기척을 찾기 어려웠다. 초저녁에도 불이 켜진 집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상점들도 대부분 문을 닫았다. 지진 피해를 입은 곳은 테이프나 비닐로 대충 때워놓기도 했다. 장성동 주민 김모씨는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걱정이 될 수밖에 없다. 집을 나와 친척 집으로 가거나 임시 대피소로 옮긴 이웃들이 많다”고 전했다. /포항=장지승기자 진동영기자 jj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