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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워치-가벼워진 인문학]인포테인먼트를 넘어 렉처테인먼트 전성시대 열렸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외면을 받으며 미운 오리새끼 신세로 전락했던 인문학이 방송 등 영상콘텐츠에서는 백조로 화려하게 부활해 ‘렉처테인먼트’를 주도하고 있다. 문사철(문학·사학·철학) 등 이른바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인문학은 교양과목에서는 물론 전공에서조차 외면받아 존폐의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2040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어쩌다 어른’, ‘말술클럽’, ‘차이나는 클라스’, ‘20세기 소년 탐구생활’, ‘유아독존(유식한 아재들의 독한 인물평Zone)’, ‘명견만리’,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등 인문학을 가미한 예능·교양 프로그램이 잇달아 제작되고 있다. ‘렉처테인먼트’의 이 같은 인기는 방송이라는 부담없는 플랫폼을 통한 인문학의 잠재 수요의 발현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취업을 위해 실용학문을 선택했고, 인문학에 대한 욕구가 배움의 현장에서는 억눌렸지만 취업과 상관없는 방송 등 엔터테인먼트에서는 자유롭게 수요로 이어졌다는 것. 여기에 빅데이터 등 수 많은 정보 중에 ‘진짜’ 정보를 가릴 수 있는 안목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근본적인 지식 즉 인문학에 대한 갈증 역시 이 같은 현상을 더욱 확산하고 있다.

우선 ‘알쓸신잡’은 ‘렉처테인먼트’ 대표 프로그램이다. 유희열, 유시민, 황교익, 김영하, 정재승 등이 국내 여행을 떠나면서 여행지에 얽힌 혹은 이와는 상관없는 인문학적 지식을 풀어낸 이 프로그램은 최고 시청률 8.5%(시청률 조사기관 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 기준)를 기록하는 등 커다란 사랑을 받았다. 특히 이 프로그램의 20~40대 시청률이 최고 5.1%에 이르는 등 2040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최근에는 유희열, 유시민, 황교익, 유현준(건축가), 장동선(뇌과학자) 새로운 멤버로 시즌2를 시작했을 정도로 시청자들의 호응은 뜨겁다. 그동안 알아봐야 취업하는 데 혹은 밥 먹고 사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치부했던 역사, 문학, 철학을 비롯해 잡다한 지식은 시청자들에게 휴식을 주는 한편 잊고 살았던 문제와 감성들을 소환하는 트리거로 작용했다. ‘알쓸신잡’의 제작진은 “출연자들의 수준 높은 지식이 방송을 통해 편하게 전달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며 “젊은 층의 인문학에 대한 니즈 또한 시청률을 견인하는 요인인 것 같다”고 전했다. ‘알쓸신잡’이 인기를 끌자 ‘말술클럽’, ‘유아독존’, ‘20세기 소년 탐구생활’ 등 인문학을 가미한 예능 프로그램들이 잇달아 시청자들을 찾고 있다.


이보다 앞서 미국 비영리 재단이 운영하는 TED((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 강연회, ‘명견만리’, ‘어쩌다 어른’ 등 텔레비전 강연 프로그램들이 렉처테인먼트의 물꼬를 텄다. TED는 18분 동안 과학에서부터 국제 이슈까지 다양한 분야에 대한 강연이며, 그동안 빌 클린턴, 앨 고어를 비롯해 노벨상 수상자 등 세계적인 인사들이 연사로 나섰다. 국내에서는 지난 2015년 ‘명견만리’가 ‘렉처멘토리(Lecture+documentary)’라는 장르를 개척하며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저명한 강연자와 방청객이 우리 사회가 직면한 이슈들을 함께 들여다보는 이 프로그램은 책으로 출간됐으며, 문재인 대통령도 추천도서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같은 해 방송을 한 ‘어쩌다 어른’ 역시 강연자를 내세워 우리 사회의 이슈에 인문학적 접근을 시도해 렉처테인먼트의 선두주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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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시청자들의 지적 욕구를 충족하는 프로그램은 시대가 요구하는 지식에 따라 변형되고 진화했다. 인문학에 대한 대중의 욕구 이전에는 정보에 대한 갈증이 컸다. 이 때문에 2000년대 초반 방송가에는 정보의 전달에 오락성을 가미한 ‘인포테인먼트(information+entertainment)’ 프로그램이 봇물을 이뤘다. 인터넷이 보편화되고 지식이 대중화되기 이전인 당시에는 정보에 대한 니즈가 컸던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각 시대에 따라 시청자들이 요구하는 지식이 조금씩 다른데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에는 정보에 대한 요구가 많았다면, 현재는 정보가 넘쳐나 이를 거를 수 있는 안목을 키울 수 있는 인문학에 대한 갈증이 크다”고 말했다.

연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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