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美·中의 평화시대(Pax Sino-Americ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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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6세기 말 이탈리아 반도는 북부의 에트루리아왕국과 남부의 그리스 식민도시, 중부의 도시국가로 나뉘어 세력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중부지방의 작은 도시국가에 불과했던 로마는 이후 이웃 도시국가들과의 동맹을 바탕으로 정복전쟁에 나서 지중해를 ‘우리의 바다(Mare Nostrum)’라고 부를 정도의 대제국이 됐다. 특히 아우구스투스 황제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 이르는 약 200년은 로마의 황금기였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로마의 질서가 마냥 평화롭게 형성된 것이 아니라 강한 군사력에 의해 억지로 유지된 것이라는 점이다. 로마의 황제들은 속주의 반란은 무자비하게 짓밟았고 식민지 주민들에게는 폭력과 착취를 일삼았다. 후대의 역사가들은 이 힘에 의한 가짜 평화시대를 ‘팍스 로마나(Pax Romana)’라고 불렀다.


이 같은 현상은 이후 국제정치 무대에서 심심찮게 등장한다. 산업혁명을 통해 경제력을 키운 영국은 나폴레옹 전쟁 이후 강력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식민정책을 펴나갔다. 영국은 아메리카와 아시아·오세아니아·아프리카 등에 식민지를 확보함으로써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됐다. 빅토리아 여왕이 재임한 60여년(1837년~1901년)은 영국의 힘이 절정에 달한 ‘팍스 브리타니카(Pax Britannica)’ 시기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냉전이 시작되면서 소련과 미국이 세계 질서를 양분하는 ‘팍스 러소-아메리카나(Pax Russo-Americana)’의 시기가 있었고 1991년 소련이 붕괴된 후에는 미국에 의한 지배를 뜻하는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가 유지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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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위상에도 변화 조짐이 엿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방문 이후 미국의 힘이 다소 떨어지면서 ‘미·중의 평화시대(Pax Sino-Americana)’가 대두하는 것이 아니냐는 진단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중국이 군사력과 경제력, 문화·도덕적 측면에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에 도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단계에 이르기 위해서는 중국이 주변 국가들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는 소프트파워를 갖춰야 하지 않을까. /오철수 논설실장

오철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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