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해외칼럼]트럼프의 위험한 사우디 투자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CNN ‘GPS’ 호스트

트럼프, 사우디 '피의 숙청' 지지

빈살만 '이란 누르기'에 힘보태

미국, 중동의 늪으로 뛰어든 꼴

파리드 자카리아파리드 자카리아


도널드 트럼프는 지난주 아시아 순방 결과를 발표했다. 물론 “대성공”이라는 자평이었다. 그는 “우리의 위대한 국가가 아시아에서 다시 존경받고 있다”는 트위터도 날렸다.

하지만 최근 주요 방문국에서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는 그의 주장과 상반된다.


아시아 순방국 가운데 핵심국은 일본과 한국이었다. 그러나 여론조사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의 17%, 일본인의 23%만이 그에게 신뢰를 보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집권 2기에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한국인의 88%, 일본인의 78%가 신뢰감을 표시한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가 있다.

사리추구와 ‘미국 우선’을 강조하는 트럼프의 수사는 많은 아시아인에게 미국의 후퇴 징후로 읽혔다. 이와 대조적으로 시진핑 중국 주석이 제시한 어젠다는 보다 개방적이고 진취적이며 야심 차다는 평가를 받았다.

트럼프의 해외정책은 세계에서 가장 불안정한 지역인 중동을 송두리째 뒤흔들 수 있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 상태다.

위로부터의 혁명이라고밖에는 달리 설명할 수 없는 사우디아라비아 내부의 수상스러운 일련의 움직임에 트럼프는 서슴없이 청신호를 보냈다. 아마도 그들 중 일부는 사우디가 오랫동안 필요로 했던 실질적 개혁일 수 있다. 그러나 사우디 내부의 모든 움직임은 리야드는 물론 중동 전체의 안정을 해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사우디의 새로운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은 한편으로 보수적인 성직자들을 투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개혁을 부르짖는다.

빈 살만의 가장 최근 타깃은 사우디 왕국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해온 왕자들로 그중에는 부패혐의를 받고 있는 국가방위군 수장이자 억만장자 투자자인 알왈리드 빈 탈랄도 포함돼 있다.

한 아랍권 고위정치인 겸 사업가는 왕자들의 체포 이유가 아무래도 의심스럽다고 털어놓았다. “사우디 왕자들은 정부 시스템 전반에 깊숙이 뿌리내린 제도화된 부패에 너나없이 연루돼 있다. 만약 이것이 진정한 부패와의 전쟁이라면 빈 살만 왕세자는 알왈리드를 사우디 왕자들 중 맨 마지막으로 체포했어야 한다. 만약 테러와의 전쟁이 중요 관심사라면 지난 6월 빈 살만과 교체돼 왕세자 자리에서 내려온 무함마드 빈 나예프는 손대지 말아야 했다”는 견해다. 그러나 빈 살만은 빈 나예프의 은행계좌까지 동결시켰다.

지난 10년 동안 빈 나예프는 미국과의 긴밀한 협조하에 알카에다 및 그와 유사한 테러그룹들과의 전쟁을 주도했으며 일상적으로 미국 관리들에게 후한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트럼프는 미국의 오랜 동지인 빈 나예프의 편을 들어주기는커녕 구체적인 기소이유를 밝히지 않은 것은 물론 공정한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진행된 빈 살만의 숙청작업을 트위터를 통해 지지했다.


사우디는 역사적으로 세 개의 기둥에 의지해 안정을 유지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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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기둥인 왕실은 1만5,000~3만명의 왕족이 느슨하게 결합한 그룹으로 사우디 소사이어티의 두 번째 기둥인 부족(tribes)들과 통혼해 인척관계를 형성한다. 이들 두 개의 기둥은 지난 40년간 힘을 키워온 사우디의 초정통파 종교집단과 동맹을 맺는다.

빈 살만은 종교적 온건주의에 관해 적절한 지적을 해왔고 세 개의 기둥을 배척하는 듯한 모양새를 취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그는 사우디 정권의 구조 자체를 합의에 기반을 둔 후원국가(patronage state)에서 중앙화된 통제에 바탕을 둔 경찰국가(police state)로 바꿔가고 있다.

이런 변화의 시도가 통할지는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빈 살만 왕세자가 과감하고도 위험한 국내 어젠다를 추구하는 것과 동시에 일련의 공격적 대외조치를 취했다는 점이 더 큰 수수께끼이자 위험이다.

그는 공습 감행과 육로·해로·항로 차단 등으로 예멘에 대한 군사개입을 확대했다. 또 카타르를 순종적인 위성국가로 만들기 위해 격리조치도 단행했다.

시아파가 장악한 레바논 정부를 흔들기 위해 빈 살만 왕세자가 레바논 총리의 사임을 강요한 것 역시 분명해 보인다. 이 모두가 중동지역에서 이란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앞서 말한 조치들은 중동이라는 복잡한 도전에 대처하는 데 필요한 무딘 도구들이다. 사우디는 이란의 지원을 받는 시아파 헤즈볼라 그룹을 레바논 권부에서 몰아내려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수년간 사우디와 미국은 이슬람국가(IS)에 맞서는 헤즈볼라와 드러나지 않은 연맹관계에 있었다. IS는 미국이 지원하는 쿠르드 세력과 이란이 뒤를 봐주는 시아파 민병대의 협공에 밀리고 있다. 그동안 IS가 점령했던 일부 지역에서 이란은 비도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다른 일부 지역에서는 도움을 주고 있다.

여러모로 사우디 전략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은 듯하다. 예멘에서의 전쟁은 재앙이 돼버렸고 사우디 국경에는 리야드에 분노하는 실패한 국가를 만들어놓았다.

카타르는 항복하지 않았고 당분간 그럴 의향이 없어 보인다. 이제까지 레바논의 시아파는 사우디가 던진 미끼를 거부해 나라 전체가 내전으로 빠져드는 것을 막는 등 책임 있게 행동했다.

그러나 중동지역 어느 곳에서나 긴장이 고조되고 종파주의가 세력을 확장하고 있기 때문에 어디선가 한두 번의 오판과 사고가 발생할 경우 지역 전체가 통제불능 상태로 빠져들 수 있다.

트럼프가 사우디 전략을 강력히 지지하는 상황에서 미국은 점점 깊어지는 중동의 늪으로 끌려 들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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