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꾼’은 ‘왕의 남자’ ‘라디오스타’ ‘즐거운 인생’ ‘님은 먼곳에’ ‘평양성’의 이준익 감독이 이끄는 연출부에 있던 장창원 감독의 입봉작이다. 오랜 시간 이준익 사단으로 활동해온 장창원 감독은 현빈부터 유지태, 배성우, 박성웅, 나나, 안세하 등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하는 범죄오락영화 ‘꾼’을 세상에 내 놓았다.
‘꾼’을 세상에 내놓기까지 걸린 시간은 3년. 장창원 감독은 “3년 동안 지은 농사의 수확을 앞둔 농부의 심정이랄까. 설레기도 하고 기대가 되기도 하고 또 떨리고 불안하다”고 개봉을 앞둔 소감을 전했다.
장창원 감독이 ‘꾼’을 이야기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두 개의 사건은 ‘자신의 뿌리’라고 밝힌 이준익 감독이 시나리오를 보고 “잘 썼다”고 인정해주던 순간, 그리고 주인공 배우 현빈이 예상보다 빨리 ‘OK’답을 보내왔던 순간이다.
조감독직을 내려놓고 몇 년간 두문분출하며 시나리오를 써나갔던 장창원 감독은 드디어 시나리오의 마침표를 찍고 이준익 감독과 함께 일하는 어르신 2분에게 시나리오를 보냈다고 한다. 이것 쓰다 엎고, 또 저것 쓰다 엎고 하던 시간을 보낸 뒤 나온 시나리오였다. 시나리오를 보낸 뒤 ‘읽어주세요’라고 콜을 보낸 상황이었지만, 읽고 나고 이준익 감독은 어떤 말도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날 사무실에서 만나자 마자 건넨 말이 “왜 이렇게 잘 썼어?”였다고 한다.
장감독은 그 날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몇 년의 노고가 날아가는 짜릿한 희열을 느낀 날이었다. 정말 내가 의지하는 사람들이 인정해준 것 아닌가. 내 인생의 극적인 날이었다. 하나의 숙원을 풀어낸 것 같은 그런 날 이었으니까. 평생 그 기억이 갈 거 같다. 혼자 글을 쓰는 시간이 너무 외로웠다. 동료 선배에게 인정 받을 때 굉장히 짜릿한 기분을 느꼈다.”
장창원 감독은 지금까지 휴먼드라마에 가까운 영화를 주로 만들어왔다. 스스로도 자신이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영화 역시 휴먼드라마이다. 반면 이번에 내 놓은 ‘꾼’은 케이퍼 무비에 가깝다. 장감독은 “‘꾼’ 영화는 저에게도 스스로의 몰랐던 부분을 발견하는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털어놓았다.
“저도 모르는 저의 성향이었던 것 같다. 잘 할 수 있고 재미있다고 한 첫 이야기가 바로 ‘꾼이었으니까. 어쨌든 영화는 이야기고, 이야기는 재밌게 짜여지는 게 첫 번째 단계다. 어떤 이야기를 계획하고 통쾌한 이야기를 그리고 싶고 그렇게 하다보니 이렇게 됐다. 회사가 해오던 영화랑 다른 색깔의 작품이었는데, 이준익 감독님이 저한테 에너지를 팍 심어줬다. 제가 바라던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첫 걸음이 됐다.“
‘꾼’을 준비하며 또 한번 기뻤던 순간은 현빈 캐스팅이 성사됐을 때 이다. 장 감독은 “갑자기 연락을 받아서, 혼자 쑥스러운 포즈로 탄성을 부르면서 좋아했다”고 전했다.
현빈을 1순위로 둔 이유는 ‘지성’이란 인물을 현빈이란 배우에 대입했을 때 감독이 가장 궁금했기 때문이다. 무거운 사연을 가지고 있지만 가볍게 풀어내는 영화에서 더욱 기대가 됐고 궁금한 부분이 많았다고 한다.
신인감독의 입봉작이라 더더욱 선뜻 제안을 못하고 고민중이던 장감독은 현빈이 차기작을 검토중이란 소식을 듣고 바로 제안을 했다고 한다. 장감독은 ‘방심하고 있었는데 긍정적인 답이 빨리와서 놀랐다’고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배우가 어떤 작품에 몰입하고 있을 땐 다음 작품을 제안하기가 힘들다. 배우의 컨디션이나 니즈. 전작과의 겹치지 않는 타이밍이 중요하다고 봤다. 그래서 최근에 배우가 보여주지 못한 작품을 제안하고 싶었다. 워낙 바쁜 배우라 더욱 대본을 건네는 타이밍을 고려했다. 시나리오를 빨리 읽고 답을 주셔서 너무 행복했고 감사했다.”
‘꾼’의 사전적인 뜻은 어떤 일에 능숙한 사람을 낮게 부르는 말이다. 장감독은 ‘꾼’은 한가지 의미만을 내포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꾼’이란 말을 듣고 처음엔 ‘사기꾼’이란 의미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뭔가를 잘 하는 사람을 떠올리기도 한다. 또 정상적인 세계 아래, 즉 뒷 세계에서 활약하는 인물들이 그려지기도 한다. 저희들 입장에서도 ‘꾼’이란 말을 듣고 궁금증이 커진다. 사회적으로 정당한 것보다 조금 빗겨가는 이야기 일 것 같아서 매력적으로 읽혀질 것 같았다. 다들 맘에 들어하셔서 이렇게 최종 제목으로 결정되고 개봉까지 오게 됐다.
‘꾼’은 답답한 현실을 통쾌하게 해줄 에너지가 가득한 영화이다. 사기꾼들이 다른 사기꾼을 잡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는 발칙한 상상에서 출발, 처음부터 끝까지 예측을 벗어나는 꾼들의 세계를 유쾌하게 그려내며 차별화된 재미를 추구했다. 그는 “조희팔 사건의 무게감 및 현실에서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들어가 있지만 오락영화내에 담아내는 것도 가치있는 주제라고 생각했다. ”고 소신을 밝혔다.
장창원 감독의 첫 발걸음은 성공적이다. 통찰력이 높은 영화 메이커 이준익 감독의 에너지와 내공을 감히 따라갈 수 없다고 말하는 그이지만 그가 진정으로 바라는 건 ‘이야기꾼’이다. 관객들이 딴 생각을 못하게 홀리는 현혹꾼으로 불리고 싶다는 욕심도 밝혔다. 그렇게 되기 위해 더욱 노력하고 싶다는 포부의 표현이다.
“좋아하는 영화를 끝까지 할 수 있었음 하는 게 오랜 꿈이죠. 이준익 감독님처럼 60이 되어도 왕성하게 영화를 만들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꾸준히 오래 하는 것 만큼 대단한 게 없다고 본다. 10편이 넘게 작업하는 걸 보면서 존경스러운 마음이 크다. 이번 ‘꾼’을 하면서는 감독으로서 임해야 하는 자세를 많이 이야기 해주셨다. 물론 그 전에도 엄청난 ‘토킹 머신’이란 별명처럼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시는 분이다. 그걸 제가 다 기억하고 흡수했다면 좀 더 빨리 데뷔할 수 있었지 않을까. 하하. 저도 이야기꾼 그 길로 갈 수 있게 꾸준히 경험을 쌓아야죠.“
/서경스타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