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수능일 ‘無震’ 무탈을 기원하며

박현욱 여론독자부 차장



재난과 재해를 관망하는 대중들은 독특한 시각이 있다. 자신만은 위험과 무관하다는 믿음이다. 일종의 최면 같은 위험 외면이다. 다른 사람에게만 위험이 일어날 수 있다는 미망과 착각을 심리학에서는 ‘타자(他者)의 논리’라고 정의한다.

위험 외면은 자아의 안전을 위한 심리적 메커니즘으로는 훌륭한데 실제 위험이 닥치면 스스로 지키지 못하고 무력해지는 치명적 약점을 갖고 있다. 원전 수리비용이 아까워 결함을 은폐하고 거짓 보고서를 내는 데 주저하지 않은 일본 도쿄전력 수뇌부와 관리자들이 지난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지자 상황실을 벗어나 사무실과 자택으로 내뺀 사례에서도 잘 드러난다.

타자의 논리를 웬만해서는 벗어나기 힘들다. 한 사회의 뇌리를 관통할 만큼의 대형 사건이나 대참사가 기폭제가 된다. 사회적 인식 변화가 뒤따라야만 겨우 미동이 일어난다. ‘위험 사회’를 경고했던 고(故) 울리히 베크 독일 뮌헨대 교수는 이를 깨달음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가 난 그해 방한해 “앞으로도 재난은 계속 발생할 것이고 국민들의 깨달음이 거듭돼야 ‘탈바꿈’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포항 지진에서 감지된 것은 미세한 탈바꿈이다. 재해를 접한 사람들 반응과 정부의 대처는 과거 고질적 위험불감증과 정치권력의 조직화된 무책임과는 분명 달랐다. 시행 하루 전 전격 연기된 대학수학능력시험이 그렇다. 충격과 불평불만이 극에 달했다. 대신 그 순간은 짧았다. 전체와 효율을 앞장세우던 이전과 소수를 배려하고 안전이 중요함을 깨달은 이후의 차이가 짧은 공포와 불만을 덮어버렸다. 물론 이전과 이후의 기준은 세월호 참사다. 공리와 효율만이 최고라는 인식에 한 톨의 변화마저 없었다면 60만 수험생, 학부모를 포함한 수백만명을 혼란에 빠뜨릴 당국의 결단이 언감생심 가능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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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바꿈의 방향이 옳다면 그다음은 지속성이 문제다. 지진 재해만 놓고 본다면 시민의 안전과 산업 발전 측면 사이의 시각차를 인정하는 게 시작점이다. 동해안 원전들이 진도 6.5~7.0 지진도 견딜 만큼 안전하다는 확신을 근본부터 불신하는 비과학적 의심만큼이나 사회구성원의 안전 욕구를 불안만 조장하는 불순세력으로 몰아가는 것 또한 위험한 발상이다. 활성단층대가 발견되기 전이나 이를 무시하고 지은 원전이 존재한다면 이는 지진 위험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더욱 세밀한 지층 조사와 위험 대응계획을 세우라는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하루빨리 지진 피해 복구가 이뤄지기를 모두가 기원한다. 23일, 미뤘던 수능이 무사히 치러져 우리 사회 생각의 틀이 올바른 방향으로 바뀌고 있음을 조금이나마 증명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같다. 그야말로 ‘여진도 없는(無震·무진)’ 무탈이 간절한 수능 날이다.

hwpark@sedaily.com

박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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