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엔 도시락통, 한 손엔 핫팩. 긴장된 얼굴로 고사장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한 무리의 남학생들은 낯익은 얼굴을 발견하자 함박 웃는다. “샘(선생님)! 저 수능만점 맞을라고요”, “잘 댕겨올게요” 하고 평소엔 없던 너스레도 떤다. 정문 앞은 제자들 얼굴을 찾아 얼굴을 빼꼼히 내미는 동지고·포항고·동성고 교사 10여명으로 붐볐다. 다가오는 제자들을 덥썩 끌어안고 놓지 않던 3학년 담임교사 김광민(56)씨는 “지난 일주일간 학생들이 갈피를 못 잡고 많이 힘들어했다”면서 “시험장 안에서는 부디 실력을 발휘하길 바랄 뿐이다”고 전했다.
23일 경북 포항 남구 포항제철중학교에서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들은 새벽 6시부터 속속 고사장으로 들어왔다. 이번 지진 여파로 포항고등학교에서 포항제철중학교로 옮겨온 수험생 561명은 고사장이 두 번 바뀌면서 속앓이가 심했다.
수험생 아들을 둔 최영란(47)씨도 “지난 일주일간 아들이 지진처럼 흔들렸다”며 “매일 밤 여진 때문에 잠에서 깨고 배가 아프다는 등 스트레스가 심해 보였다”고 전했다. 교문 너머로 사라지는 아들 모습에 최씨는 교문 앞에서 한참 눈시울을 붉혔다. 최씨 가족은 지난 15일 지진을 피해 차 안에 대피했다가 수능 연기 소식을 들었다. 아들은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지난 일주일은 최씨 가족 모두에게 힘든 시간이었다.
주부 윤지영(47)씨도 “아들이 생각보다 씩씩하게 하더라”면서도 “심한 여진 땐 밤잠을 설쳤다”고 전했다. 지난 15일 본진을 겪을 당시 윤씨는 거실에서 고추를 다듬고 있었다. 심한 구토감에 무작정 아들 손을 잡고 집을 뛰어나왔다. 윤씨는 “일주일 연기됐으니 조금 더 공부할 수 있었다는 아들 말에 눈물이 났다”며 “부디 실수 없이 편하게 보길 바랄 뿐”이라고 전했다.
진앙과 가까운 포항 유성여고 앞에선 학부모 임정아(45)씨는 시험장에 들어간 딸에게 문자로 ‘조금만 흔들려도 시험 치지 말고 그냥 내려 와라’라고 보냈다. 임씨는 “애 시험장이 맨 꼭대기인 4층에 배정돼 속상하다”며 “애가 중요하지 대학은 나중 문제”라고 말하며 계속 문자를 이어갔다. 임씨는 “지난주 예비소집 때 이곳에서 같이 지진을 겪었는데, 너무 무서웠다”며 “수능 끝날 때까지 곁에서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같은 시간 딸을 시험장에 들여보낸 학부모 신영숙(49)씨는 “지진이 난 그날 저녁 아이가 많이 울고, 저녁엔 ‘속이 울렁거린다’더니 구토까지 했다”며 “1주일 지나 학교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용기를 냈다”고 말하며 담장 밖에서 아이 걱정을 이어갔다.
학부모와 함께 학교 교사도 같은 심정으로 수험장 밖에 서 있었다. 포항 동지여고 3학년 담임인 이미은 교사는 “지진 이후 학생들이 작은 흔들림에도 놀라는 등 계속 민감한 상태였다”고 걱정했다. 특히 이 교사는 “마음이 예민한 아이들에겐 ‘절대 울지말라’고 이야기했다”며 “선생님들도 아이들이 긴장 할까 봐 표현을 크게 못할 정도로 긴장된 일주일을 보냈다”고 털어놨다.
고사장 앞 정문엔 수험생들을 응원하는 손길도 있었다. 교문 양쪽엔 ‘수능 대박나세요’, ‘오래 기다린 만큼 잘 해낼 거예요’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고, 고등학생 후배들과 자원봉사단은 핫팩과 초콜릿, 커피를 수험생 손에 쥐어줬다. 경북 안동에서 새벽 4시에 출발했다는 김정대(48)씨는 “힘든 시기를 지나왔을 학생들 생각에 마음이 짠해 왔다”며 손수 만든 피켓을 들어 보였다. 핫팩 400개를 준비해 학생들에게 나눠 준 윤정숙(63)씨는 “꽃 같은 아이들이 지진을 겪으면서 고생이 많았다”며 “마음이라도 따뜻하게 수능을 봤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포항=장지승·신다은기자 jj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