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샌프란시스코 인근 산타클라라에 자리한 해커 도조(hacker dojo)에 들어서자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거나 3D프린터를 작동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 100여명의 사람들이 상주한다는 해커 도조에는 다른 메이커 스페이스보다 40~50대 중장년층의 모습이 눈에 많이 띄었다.
이곳에서 만난 전 웅(Jun Wong) 해커 도조 총괄 책임자(Executive director)는 “해커 도조는 지난 1997년 스타크래프트를 즐겼던 청년들이 ‘랜 파티(LAN Party)’를 하면서 놀다가 몇몇이 비디오 게임을 직접 만들어보자고 제안해 공간을 마련한 데서 시작됐다”고 소개했다. ‘랜 파티(LAN Party)’란 오프라인 공간에 모여 함께 게임을 즐기는 1990년대 후반의 문화를 말한다.
대학생이나 젊은 직장인이 대부분이었는데, 한 달에 100달러의 회비를 받고 공간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20년이 지난 지금은 창업의 산실이자 대표적인 메이커 스페이스(Maker Space)로 자리잡았다.
웅 책임자는 “지금까지 5,000여명이 해커 도조를 거쳤는데 이들 중에는 킥스타터에서 1,000만 달러를 모금한 페블 워치(Pebble Watch)와 이미지 중심의 소셜네트워크인 핀터레스트(Pinterest)가 대표적으로 성공한 스타트업”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성공한 스타트업이 잇따라 나오면서 해커 도조는 ‘창업가의 성지’라는 별칭까지 얻고 있다.
해커 도조의 차별화 포인트는 긴밀한 네트워크. 웅 책임자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토론하고, 모르는 것은 서로 도와주면서 자연스럽게 네트워킹을 형성한다”면서 “상당수 이용자들이 엔지니어이기 때문에 기술 쪽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와도 주변에 도와줄 사람이 많다는 게 큰 메리트”라고 소개했다. 특히 20~30대 청년보다는 40~50대 중장년층이 많이 눈에 띄었다.
이에 대해 웅 책임자는 “젊은 층은 대학의 스타트업 지원기관 등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직장을 다니다 창업에 도전하는 중장년층에게는 이런 공간이 거의 없다”며 “스티브 잡스나 래리 페이지 등 실리콘밸리 출신의 기업가들이 차고(Garage)에서 창업을 했다면 지금은 해커 도조와 비슷한 형태의 메이커 스페이스에서 더 많은 기회를 찾고 성공 확률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곳에서 만난 에디 프로덕트블러스트 CEO는 해커 도조에 구비된 3D프린터를 활용해 부품을 만들어 애플리케이션으로 작동하는 음료수 자판기를 개발했다. 에디 CEO는 “마켓 리서치를 전공해 관련된 분야에서 두 차례 창업을 했지만 실패했다”면서 “2년 전 새로운 아이디어를 다양하게 적용하기 적당한 공간이 있다는 친구의 소개로 해커 도조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소프트웨어를 전혀 다룰 줄 몰랐지만 해커 도조의 동료들이 크고 작은 도움을 주고 스스로 깨우치는 방식으로 기술적 문제를 해결해갔다”며 “해커도조는 나에게 또 하나의 학교”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메이커 스페이스가 혁신 성장의 키워드로 떠오르면서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이나 일본, 중국 등에서는 메이커 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유럽에서는 팹랩(Fablab), 해커 스페이스 등 민간 중심 특화형 메이커 스페이스가 확산되고 있다. 일본은 2014년 최대 전자상가인 아키하바라에 ‘DMM.make AKIBA’가 선보여 시제품 제작은 물론 대기업과 스타트업간 협력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으며, 중국 상하이에는 100여곳의 메이커 스페이스가 구축된 상태다. /산타클라라=정민정기자 jminj@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