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공기계만 판매하던 애플이 이동통신 서비스 개통 권한까지 거머쥐게 돼 국내 휴대폰 유통시장의 대격변을 예고하고 있다. 국내 이동통신사들과의 협상에서 절대적 우위에 있는 애플이 통신대리점 역할까지 하게 되면 국내 아이폰·아이패드 유통시장을 독점하는 것은 사실상 ‘식은 죽 먹기’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애플스토어에서 기기를 구매하고 바로 개통까지 가능해 편리한 측면도 있지만 기존 중소형 통신 유통대리점 및 판매점들은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어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28일 이동통신 업계에 따르면 애플은 LG유플러스로부터 대리점 코드를 취득하면서 다른 판매점 선임이 가능해졌다. 예컨대 프리스비나 에이샵·윌리스 등 기존 아이폰 판매대행 매장들도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로부터 사전 승낙만 받으면 판매점 역할을 할 수 있다. 애플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전국적인 유통조직을 갖출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전국 2만여개의 중소 유통점들은 언제든지 아이폰 소비자들을 잃을 수 있는 위기상황에 놓였다. 이미 휴대폰 시장 포화와 이통사의 지원금 축소로 과거보다 매출이 줄어든데다 애플이 대리점업을 통해 가입자들을 흡수하면 결국 생존에도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판매점 관계자는 “단순히 판매장려금이 문제가 아니다”라며 “관리수수료 등 기타수익도 줄어들 수밖에 없어 애플이 직접 개통하는 사례가 늘면 늘수록 판매점들은 상당한 수익악화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이광훈 통신비인하추진연대 사무총장은 “애플의 유통망 확대로 국내 대리점과 판매점을 고사시킬수록 애플은 국내 통신사에 대한 우월적 지위를 더 강화할 수 있다”며 “이는 곧 자신들의 협상력과 이익 극대화로 연결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애플은 이런 과정을 통해 이통사가 이동통신 서비스 판매 대가로 중소 유통망에 제공하던 판매장려금이나 관리수수료 등도 얻을 수 있어 적지 않은 부수입도 올릴 수 있다. 판매장려금은 요금제와 부가 서비스 유무, 가입조건 등에 따라 다르지만 한 대를 개통할 때 적게는 수만원에서 많게는 수십만원에 이른다. 마케팅이나 애프터서비스(AS), 광고료 등은 이동통신사에 떠넘겨 단말기 판매 수익을 올리면서 다시 이통사로부터 돈을 벌어가는 구조가 되는 셈이다. 또 가입자가 납부하는 통신요금의 3~7%를 관리수수료 명목으로 가져갈 수도 있다.
이 사무총장은 “국내 통신사가 개통 시 지급하는 개통 판매장려금이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높아 수익이 확실하고 개통한 고객 요금에서 거두는 가입·유지관리수수료도 적지 않다”며 “애플은 국내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 시장의 틈새를 이용해 한국 시장 내의 유통망 및 영향력을 확대해 국내 제조사를 견제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나 LG전자 등 국내 스마트폰을 판매하는 대리점들은 이통사로부터 받은 장려금 일부를 소비자에게 돌려주지만 애플은 지금까지도 소비자에게 제공되는 지원금에 전혀 기여하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장려금을 독식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세금 문제와도 직결된다. 애플은 국내에서 막대한 돈을 벌어가지만 이에 따른 세금 납부는 외면해 비난을 받아왔다. 국내 매출은 물론 세금 처리 방식도 확실하지 않은 사업자에 대리점 업무를 맡기며 수수료를 지급하게 되는 것이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애플은 자사의 우월한 위치와 한국 시장의 특수성을 활용해 비용은 최소화하면서도 수익은 최대로 끌어올리고 있다”며 “그러면서도 세금을 거의 내지 않으니 어떻게 고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겠냐”고 했다.
일각에서는 6,200만명에 달하는 이동통신 서비스 가입자 정보 유출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아직은 LG유플러스만 대리점 코드를 내주기로 했지만 SK텔레콤·KT도 머지않아 가세해 국내의 모든 이통사 전산이 애플과 연동되면 애플은 국내 서비스 가입자들의 정보를 전부 열람할 수 있게 된다. 사실상 어린이를 제외한 모든 국민의 정보를 볼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애플이 빅데이터 분석을 위해 이 정보를 수집, 활용할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는 이유다.
화웨이나 소니 등 기타 외국 기업들이 형평성을 거론하며 대리점 코드를 내달라고 요청했을 때 이를 거부할 명분이 없는 점도 문제다. 노충관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 사무총장은 “결국 이번 대리점 코드 발급이 선례가 돼 중국이나 일본 기업에도 대리점 지위를 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것”이라며 “우리나라 국민들의 개인정보가 온통 유출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휴대폰 판매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된다고 해도 애플이 이를 따를 리 만무하다”고 우려했다.
한편 이달 말 완공될 예정이던 한국의 첫 애플스토어는 공사 기간이 늘어나면서 내년 2월에나 정식으로 문을 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신사동 가로수길 일대에 1,297.61㎡(약 400평) 규모로 애플스토어 특유의 실내 디자인인 높은 층고가 적용된다. 1층은 제품 체험 및 판매, 2층은 제품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업무를 하는 곳이다. 2001년 5월 미국 버지니아주에 처음 생긴 애플스토어는 애플이 직접 운영하는 판매점이다. 애플 제품을 체험·구매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사용법 교육이나 수리 등도 받을 수 있다. 7월 기준으로 22개국에 498개의 매장이 있으며 아시아에서는 중국 매장이 약 40개로 가장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