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정책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가계·국가부채 관리 못하면 위기 또 온다"

'외환위기 20년' 기조연설

"20년 전엔 대기업 과도 차입 문제

지금은 가계·국가부채 증가 가팔라"

금융규제 완화 필요성 주장도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이 29일 서울 예금보험공사에서 열린 ‘외환위기 20년의 회고와 교훈 특별 세미나’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이호재기자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이 29일 서울 예금보험공사에서 열린 ‘외환위기 20년의 회고와 교훈 특별 세미나’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이호재기자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현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이 지난 1997년 외환위기와 같은 위기를 다시 겪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경제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과 금융위기 예방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29일 서울시 중구 예금보험공사에서 ‘외환위기 20년, 대한민국의 또 다른 역사 드라마’라는 주제로 열린 기조연설을 통해서다.

외환위기를 겪은 지 정확히 20년 만에 무겁게 입을 뗀 김 전 위원장은 이날 자신을 “실패한 공직자”라고 하며 외환위기 당시 상황과 이를 통해 지금 생각해볼 교훈을 조목조목 짚어나갔다.

김 전 위원장은 외환위기가 발발할 즈음인 1997년 1월20일 당시 재정경제원(현 기획재정부)에서 외환자본과장을 발령받아 위기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었다. 그가 부임한 지 나흘 만에 한보그룹이 무너지는 등 30대 대기업 그룹 중 10여곳이 완전히 고꾸라졌다. 김 전 위원장은 “재벌의 부도 행렬은 압축 성장하는 과정의 우리 경제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라고 밝혔다.


후진적인 금융 시스템이 이 같은 재벌의 문어발 식 확장을 막지 못했다는 게 김 위원장의 진단이다. 그는 “‘대마불사 은행불패’라는 도덕적해이가 사회에 만연해 있었다”면서 “금융회사들이 사업성 검증이나 철저한 심사 없이 대출로 외형만 늘리는 이자 장사에 집중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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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정부와 정치권의 안일한 대처도 비판했다. 그는 “정부는 재벌이 위기에 내몰렸지만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두려워해 정리하지 않고 오히려 살리는 데 급급했다”면서 “정치권도 표만 의식해 오히려 위기를 부채질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이후 태국·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에서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우리나라의 해외 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환란의 비극이 시작됐다.

그럼에도 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크게 세 가지로 꼽았다. 김 전 위원장은 국민 금 모으기 운동을 사례로 들며 국민의 극복 의지가 가장 큰 힘이 됐다고 밝혔다. 그는 또 한국의 수출 경쟁력과 건전한 재정이 극복의 밑바탕이 됐다고 봤다.

외환위기는 우리 경제체제가 전환되는 계기가 됐다는 게 김 전 위원장의 평가다. 그는 “외환위기를 통해 정부 주도 경제체제에서 시장 주도 경제체제로 바뀌었다”면서 “기업도 양적 경영에서 내실 경영, 질적 성장으로 성장 전략을 전환했다”고 말했다.

김 전 위원장은 또 IMF 사태와 같은 위기는 다시는 닥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무엇보다도 재정 건전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재정은 국민 경제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와 같다”면서 “20년 전에는 대기업의 과도한 차입이 문제였다면 지금은 1,400조원이 넘는 가계부채와 주요20개국(G20)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국가부채가 큰 문제”라고 우려했다.

자신이 몸담았던 금융당국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는 “규제완화가 오히려 위기의 단초가 되는 경우도 많다”면서도 “금융산업도 실물경제처럼 성장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주는 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쟁과 혁신을 유도하는 동시에 금융 시스템을 훼손하지 않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금융당국에 주문했다.

김기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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