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생활

[여명] 행정부 시정지시는 단순 '권고'일까

이종배 생활산업부장

파리바게뜨에 직접고용 시정지시

법원, 권고 불과하다 해석했지만

기업엔 명령과 같아…위축 불가피

정부 '지시 남발' 비판 새겨들어야



법률 용어 중에 ‘각하(却下)’라는 단어가 있다. 뜻을 보면 소송의 요건을 갖추지 못해 판단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인용’이나 ‘기각’이 잘잘못을 판단한다면 각하는 법원이 여러 이유로 인해 소송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관심을 모은 파리바게뜨의 ‘직접고용 시정지시 처분 집행정지 신청’ 역시 각하 결정이 내려졌다. 앞서 파리바게뜨는 서울행정법원에 고용노동부가 제빵기사 5,300여명을 직접고용하라는 시정지시에 대해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행정법원이 각하 결정을 내린 이유는 이렇다. 고용부가 파리바게뜨에 내린 ‘시정지시’가 단순 ‘권고’라고 인정한 것. 즉 행정부가 명령이 아닌 권고에 해당하는 ‘지시’를 내렸기 때문에 행정소송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사실 이번 소송의 쟁점은 고용부의 지시를 어떻게 보느냐였다. 기업 측은 ‘명령이나 처분’이라고 주장한 반면 정부는 권고에 더 무게를 둔 지시였다고 주장했다. 법원이 정부 입장을 수용한 것이다. 권고에 가깝기 때문에 행정소송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의미다. 정부와 기업이 ‘지시냐 명령이냐’를 두고 공방을 벌인 셈이다.

시정지시가 명령이냐 단순 권고냐의 법리적 판단은 법원에서 하는 것이니 이를 놓고 판결의 옳고 그름을 이 자리에서 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거 같다. 문제는 행정부의 시정지시에 대해 기업들이 느끼는 체감이다.

고용부뿐 아니라 공정거래위원회 등 여러 정부 부처들은 다양한 시정지시를 활용하고 있다. 굳이 명령이나 처분이 아니어도 시정지시를 통해 기업들로 하여금 고치라고 요구하는 것이 비일비재하다. 검찰 고발 등 강력한 행정조치가 아니더라도 정부의 시정지시만으로 기업들은 잔뜩 움츠러든다. 기업 입장에서는 시정지시 그 자체가 행정부의 행위 수단이기 때문이다.


파리바게뜨만 놓고 보자. 고용부는 제빵기사 직접고용이 권고에 가까운 시정지시라고 주장했다. 고용부는 그러나 시정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과태료와 형사 처벌을 예고했다. 아울러 시정지시 이후에도 파리바게뜨에 시정지시를 이행하라며 직간접적인 압박을 가했다. 파리바게뜨 입장에서는 시정지시 그 자체가 서슬 퍼런 행정부의 명령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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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이는 파리바게뜨만의 사례는 아니다. 공정위 역시 다양한 사안에 대해 시정지시를 내리는 부처 가운데 하나다. 공정위 시정지시를 받아들일지 여부는 기업의 판단이다. 하지만 어떤 기업이 시정지시를 거부할 수 있겠는가.

시정지시와 비슷한 행정지도도 있다. 행정지도 역시 권고에 더 가깝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행정지도에 나설 경우 어느 은행이 거부할 수 있겠는가. 당하는 은행·기업 입장에서는 행정부의 권고성 조치가 그냥 권고가 아닌 명령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굳이 문서로 기업들에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공정위원장의 말 한마디가 기업들에는 엄청 압박”이라며 “기업 입장에서 보면 행정부 수장의 말 하나, 행정부의 시정지시 모두가 큰 부담이다”라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장이 한마디 하자 프랜차이즈 업계도 유통업계도 벌벌 떨며 상생 방안을 만들어 제출했다. 아무리 하찮은 행정부의 조치라도 기업 입장에서는 그 자체가 행정부의 명령으로 느낀다.

시정지시를 남발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법조 전문가들은 행정부가 처분성이 명확한 시정명령을 내리지 않고 시정지시를 남발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시정지시가 처벌보다 먼저 개선을 이끌어내기 위한 조치라는 게 행정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앞서 파리바게뜨 판결에서 보듯 행정소송 대상이 안 되는 시정지시가 훨씬 행정부 입장에서는 유리하기 때문이다. 시정명령은 명확한 행정소송 대상이기 때문이다.

법원이 행정부의 시정지시를 권고라고 판단해도 기업들이 피부로 느끼는 것은 명령이나 처분이다. 시정지시를 행정부의 단순 권고로 인식하는 기업은 없다. 그런데도 행정부는 시정지시를 권고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ljb@sedaily.com

이종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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