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퇴근길 책한잔
‘술과 책이 있는 독립 책방’을 모토로 한 이 서점은 이미 미디어나 SNS를 통해 많이 소개된 바 있다.
궁금했다. 술과 책이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 조합이 어떤 시너지를 내는지 혹은 그 반대일지...
퇴근길에 가야 제대로겠지만 늦은 오후에 방문해봤다. 좁은 골목길, 주의해서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법한 평범한 가게 앞엔 빈 술병들이 줄지어 있고 ‘책 한 잔’이라는 입간판이 무심한 듯 세워져 있다.
책방 안으로 들어서니 대낮인데도 어둑한 실내엔 가지각색의 독립출판물들이 자기만의 빛을 발하고 있는 듯했다. 간단히 맥주를 한병 시키고 이 책 저 책 들춰봤다.
이런 책들이 다 있었네
몰랐었다. 이렇게나 많은 독립 서적들이 있었다니... 독립출판인 만큼 겉표지가 화려하거나 종이나 인쇄 상태가 좋을 리 없지만 제목과 내용만큼은 자기만의 독특한 스토리로 눈길을 끌기 충분했다. 또한 책 속의 그림이나 활자 크기, 모양도 자유로움과 기발함이 돋보였다.
‘취준 2년’ ‘30대 백수 쓰레기의 일기’ 같이 청년실업의 현실을 쓴 책부터 우울과 치유를 담은 ‘아직은 따스할지도 모를’ ‘아무것도 할 수 있는’ 등 개인의 고백이 대부분이어서 독자에게 더 어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오빠 일기’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책을 들췄더니 초등생 일기장을 그대로 책으로 만들었다. 알고 보니 일찍 세상을 뜬 오빠를 기리며 동생이 오빠 일기장을 출간한 책이라고 한다. 무속인 인터뷰집 ‘무’ 등 다소 생소한 주제를 다루거나 ‘노처녀에게 건네는 농’처럼 말하고 싶은 현실을 재미있게 풀어낸 책들도 있다.
치장하지 않고 속을 다 내보이는 책
한마디로 출판 범위나 내용, 형식, 그 무엇도 얽매이지 않는 점이 독립출판의 매력이라 할 수 있겠다. 수익이나 상업성 측면에선 부족할지 몰라도 자신만의 이야기를 출판하고 싶은 개인의 욕구를 충족시킨다는 면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 또 어느 작가의 말처럼 특별할 것 없는 누군가의 일상이, 역시 특별할 것 없고 평범한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는다면 그것이 바로 독립출판의 진정한 가치가 아닐까.
책과 닮아있는 책방의 색깔
무엇보다 독립출판을 다루는 서점들은 여기저기 꽤 있다. 그러나 이 책방만큼 독립출판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아내는 서점도 없을듯싶다. 손님이 들어와도 별 관심 두지 않는 쿨한 주인이나(덕분에 눈치 보지 않고 맘껏 살펴보고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무심하게 펼쳐놓은 책들에 쌓인 먼지조차도 자연스럽게 보이는 건 이 책방이어서 가능한 듯하다. 저출산, 고령화 등 한국 사회의 문제점들에 대해 수시로 토론회가 열리고 인디 뮤지션의 콘서트나 영화감상도 가능하다고 한다.
어느새 맥주 한 병을 다 비웠다. 책에 취해 술이 더 잘 들어 가는 것 같기도 하고, 술기운에 책이 더 잘 읽히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환상의 조합 아닌가.
/강금희 기자 ghka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