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정신과 의사가 가장 많은 프랑스 파리의 중심가에 있는 정신과 의사 꾸뻬씨의 진료실은 언제나 상담 환자들로 넘쳐났습니다. 그는 많은 것을 갖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불행하다고 여기는 사람들 틈에서 어느덧 자신 역시 행복하지 않다고 결론을 내리고 진정한 행복을 찾아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는 중국과 아프리카, 그리고 미국 등지를 여행하면서 행복에 관한 교훈을 스물세 가지로 정리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화통한 웃음을 자주 터뜨리는 중국 노승에게서 터득한 행복의 비밀이었습니다. 그 비밀은 다름 아니라 행복은 ‘미래의 목표’가 아니라 ‘현재의 선택’이라는 점입니다.
지금 이 순간 행복하기로 선택한다면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건만 대부분의 사람이 행복을 목표로 삼으면서 지금 이 순간 행복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가난이나 부유함, 과거나 미래의 일들과는 상관없이 누구라도 지금 이 순간 생각에서 벗어나 눈을 뜨고 바라보기만 하면 발견할 수 있는 행복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지닌 ‘꾸뻬 씨의 행복 여행’을 무릎을 쳐가며 읽고 필자가 최근에야 발견한 달에 대한 단상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때에 따라 초승달·반달·보름달·그믐달 등으로 부르고 있지만 사실상 달은 한 번도 이지러지지 않았습니다. 달은 항상 보름달입니다. 달은 항상 크고 밝고 둥급니다. 우리 눈에 이지러지거나 반쪽짜리로 보인다고 하더라도 달 자체가 이지러지거나 반쪽 난 것은 아닙니다. 그림자에 가려 그렇게 보일 뿐이지 일종의 착시현상이라고나 할까요.
우리는 이러한 착시현상 속에서 끊임없이 보름달을 기다립니다. 심지어 연초에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빌면 반드시 이뤄진다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가지고 크고 밝고 둥그런 대보름달을 기다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대보름달은 일 년에 단 한 번 속절없이 지나가 버립니다. 그러고는 다시 내년의 대보름달을 기다립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달은 항상 보름달입니다. 나날이 보름달이며 나날이 소원을 빌면 이뤄지는 날입니다. 일 년에 단 한 번인 대보름달만 즐기고 눈에는 초승달 혹은 반달로 보이는 가짜 달에 속고 있을 것인가요. 실은 매일 보름달인 진짜 달을 즐길 것인가요.
행복은 달의 본모습처럼 이미 매일 와 있는 것이 아닐까요. 매일매일을 크고 밝고 둥글게 살아갈 수 있건만 언젠가 크고 밝고 둥글게 살 수 있는 날이 오리라고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바로 지금 여기에서의 행복과 웃음을 유보하고 좀 더 풍족한 생활과 좀 더 원만한 관계와 좀 더 많은 소원이 이뤄질 때 비로소 행복한 웃음을 지을 수 있으리라고 스스로 위안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요. 하지만 그런 날은 마치 대보름달처럼 일 년에 단 한 번 순간적으로 지나가 버리거나 아예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 보자면 우리는 수많은 착시현상 속에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심지어는 시간과 공간 자체도 우리가 설정한 기준에 따라 볼 뿐입니다. 이 땅을 기준으로 보자면 해는 동쪽에서 떠 서쪽으로 지지만 우주 허공에서 보면 오히려 지구가 스스로 돌면서 해의 둘레를 돌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참선의 가르침도 결국 고정관념과 선입견이라는 해묵은 착시현상에서 벗어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면 바로 지금 여기에서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려 시대의 진각국사 혜심이 집대성한 한국 최초의 공안집(수행자를 인도하기 위해 제시하는 과제) ‘선문염송’ 제1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존께서 도솔천을 떠나시기 전에 이미 왕궁에 강림하셨으며 어머니 태에서 나오시기 전에 이미 사람들을 다 제도하셨다.”
석가세존께서 도솔천에 머무르시다 카필라왕궁으로 강림하셨으며 어머니인 마야부인의 태에서 나와 태자의 몸으로 계시다 출가하고 마침내 성도 후 중생을 제도하신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화두는 도대체 무슨 소식을 말하고 있을까요. 도솔천을 떠나시기 전 이미 왕궁에 강림하신 것은 그렇다 치고 어머니의 태에서 나오시기 전에 이미 사람들을 다 제도하셨다고요. 이것이 과연 무슨 소식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