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와 의료계, 그리고 감사원.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이질적인 조합이지만 이들을 하나로 묶는 공통분모가 있습니다. 바로 혁신성장입니다. 최소한 기자가 보기에는 그렇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11월15일자 서울경제신문 3면 기사입니다. 제목은 이렇습니다. ‘[서비스산업 혁신전략 출발부터 반쪽] 혁신성장 하겠다더니...‘핵심 개혁’ 의료부문은 쏙 빠져(http://m.news.naver.com/read.nhn?oid=011&aid=0003152795&sid1=101&mode=LSD)’.
내용을 요약하면 혁신성장의 핵심인 서비스산업 혁신전략을 기획재정부가 준비 중인데 시민단체와 의료계 반대와 이를 의식한 청와대 눈치에 의료부문 규제개혁과 성장전략을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본지 단독보도로 알려진 후 다른 매체들의 후속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감감무소식입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조차 최근 “서비스와 관련해 의료는 워낙 민감한 이야기가 됐다”며 “서로 간에 입장을 수용할 것은 수용하고 조금 돌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기재부의 의지와는 별개로 이를 추진할 수 있는 상황이 안 된다는 뜻이죠. 지금은 못한다는 얘기입니다.
왜 그럴까요. 시민단체와 의료계의 반발이 거셉니다. 서비스업 혁신, 특히 의료부문 개혁을 하려면 원격진료와 투자개방형 병원, 유전자 진단 관련 규제 등을 모조리 풀어야 합니다. 시민단체와 의료계는 의료민영화의 첫걸음이라고 주장합니다.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의료는 우리가 강점이 있습니다. 미국식 의료기술 체계를 받아들인 우리나라는 의료시설과 서비스는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습니다. 지금도 의료관광객들이 많습니다. 지난해 우리나라를 찾은 의료관광객은 36만4,189명으로 전년 대비 22.7%나 증가했습니다. 규제를 풀고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일자리를 늘리고 수출산업으로도 육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규제가 그리고 특정 조직이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죠.
정부 고위관계자는 이를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청와대 쪽에서 의료민영화로 비칠 수 있는 규제완화는 극구 싫어해요. 지지층을 신경 쓰는 것이죠. 특히 의료계는 밥그릇을 걱정하는 것이고. 청와대에서 이렇게 보는 한 서비스업 혁신은 불가능합니다.”
서비스업 혁신의 양대 축은 의료와 교육입니다. 그 중의 하나인 의료가 안 된다면 서비스업 혁신은 하나 마나입니다.
의료산업 혁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들입니다. 의사나 시민단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국민들이 얼마나 질좋은 서비스를 값싸게 받느냐가 핵심입니다.
의료계의 공적(?)인 기재부도 의료민영화를 할 생각은 없습니다. 경쟁요소를 도입해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며 국민들이 더 나은 서비스를 받게 하자는 게 관료들의 생각입니다. 적어도 기자가 만난 공무원들은 그랬습니다.
정밀의료만 해도 국민건강 증진과 함께 건강보험 재정을 아끼는 카드입니다. 규제완화로 정밀의료가 가능해지면 국민들은 더 빠른 시간에 내몸에 맞는 약과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거꾸로 이것저것 시도하는 과정에서의 비용을 줄일 수 있죠. 그래서 의료 혁신은 중요합니다.
여기 또 하나의 걸림돌이 있습니다. 바로 감사원입니다. 의료혁신을 비롯해 공무원들이 혁신성장을 위해 뛰려고 해도 그들의 뒷다리를 잡는 게 있습니다. 감사원 감사죠.
무리하게 규제완화를 추진하려고 하다간 감사원 감사를 받고 징계를 받을 수 있습니다.
감사원도 나름 할 얘기가 많을 테지만 사후적발식 ‘코드감사’에 공무원들은 지쳐있습니다. 오죽하면 대통령 주재로 지난달 28일 열린 ‘혁신성장전략회의’에서 감사원 감사가 바뀌지 않으면 혁신성장은 어렵다는 취지의 발언이 나왔을까요(서울경제 12월2일자 1면 ‘단독-감사원 때문에 혁신성장 어렵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11&aid=0003165711).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혁신성장을 외쳐본들 공염불입니다. 혁신성장의 핵심은 버려두고 주변만 두드리니까요. 실제 혁신을 가장 잘 하는 곳은 대기업들입니다. 삼성이나 LG, 현대자동차만큼 우리나라에서 혁신을 더 잘하는 곳이 있을까요? 그런데도 대통령은 대기업은 뺀 채 중소기업과 창업만 얘기하고 서비스업 혁신의 핵인 의료는 내버려둡니다. 혁신성장전략회의에 참석한 김동연 부총리가 “대한민국은 안 돼 공화국”이라고 발언했다고 하는데 대통령이 이 말을 뼛속 깊이 새겼으면 합니다. 새 정부의 혁신성장 의지를 믿을 수 없다는 얘기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닙니다.
/세종=김영필기자 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