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한반도24시] 정권과 외교정책

오준 전 유엔대사·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교수

공과 검토없이 '前정권 지우기'

국제적 혼란·예산 낭비 등 불러

한일 위안부 합의 재고 방향 등

포괄적 안목으로 국익 우선해야

오준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교수


필자가 외교부에 근무했던 38년 동안 우리나라에는 여덟 번의 정권 교체가 있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도 달라졌다. 특히 민주화가 된 후에는 여·야 간은 물론이고 같은 여당 간의 정권 교체 시에도 각종 정책이 방향을 바꿔왔다. 민주사회에서 새로운 정책을 공약으로 집권한 새 정부가 기존 정책을 바꾸는 것은 당연하지만 외교정책에 있어서는 일반 국내 정책과 다른 고려가 필요하다. 한마디로 정권이 바뀐다고 국가가 바뀌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의 어떤 분야에서든 새 정권이 정책을 검토할 때 전 정권이 잘한 것을 승계, 발전시키고 잘못한 것은 시정 또는 폐기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불행히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과거 정책은 그 공과와 무관하게 매도되거나 무시되는 것을 흔히 봐왔다. 필자의 주관적 평가지만 성공적인 외교정책이었는데 그런 운명에 처한 경우를 여러 번 봤다. 노무현 정부 말기에 우리가 국제개발협력에 중점을 부여해서 지난 201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 가입과 공적개발원조(ODA) 증액 목표를 국제사회에 발표했던 것도 그러한 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온 후 국내 경제 등을 이유로 재검토 대상이 된 후 OECD 위원회 가입은 어렵게 실현됐지만 2015년까지 우리의 ODA를 총소득 대비 0.25%로 늘린다는 계획은 아직도 실현이 요원해 보인다. 이명박 정부 외교에서 국제적으로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할 수 있는 ‘녹색성장’ 정책도 그런 예다. ‘green growth’하면 우리나라가 떠오를 정도로 소위 대박을 쳤는데 박근혜 정부에서는 그 용어 자체를 가급적 피하려는 것 같다는 지적을 다른 나라 외교관들로부터도 들었다. 멀리 올라가면 우리가 세계에 내놓을 게 별로 없던 박정희 정부 시절부터 농촌 개발 모델로서 국제적 주목을 받아온 ‘새마을운동’이 있다. 새마을운동은 어떤 정부에서는 지나치게 과대 포장되고 어떤 정부에서는 우리 스스로 홀대함으로써 국제사회를 계속 헷갈리게 하고 있는 우리의 대표적 히트상품이다.


정권이 바뀔 때 외교정책의 승계 검토가 어려운 것은 성공적인 정책보다는 잘못된 외교정책을 어떻게 할 것이냐에 있다고 본다. 특히 외국과 합의를 거친 외교적 결과는 우리가 일방적으로 정권이 바뀌었으니 ‘재검토’하는 데 한계가 있다. 예를 들면 우리가 과거 북한과 수교 경쟁을 할 때 수교만 해주면 인구가 20만도 안 되는 섬나라에도 대사관을 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가 더 이상 경쟁의 의미가 없어지자 무더기로 수십 개의 대사관을 폐쇄했다. 그중 상당수는 몇 년 후 양국 관계를 고려, 다시 대사관을 설치해야 했기 때문에 외교정책은 물론이고 예산 차원에서도 단기적 속단이 가져온 대표적 실패 사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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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조만간 2015년 12월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일 합의 입장을 결정해야 할 것이다. 현재 합의의 배경과 과정에 대한 검토가 진행 중인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결론이 나올 가능성은 희박한 것 같다. 위안부 희생자 등 당사자들의 입장을 제대로 반영했는지 또는 절차적인 흠결이 있었는지 등의 문제점이 제기돼왔다. 필자의 시각으로는 그 합의가 마치 위안부 문제를 국제적으로 종식하는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 한 점도 큰 문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한일 간의 문제일 뿐 아니라 여성 인권과 전쟁범죄에 관한 국제적인 문제다. 한일 간에 어떤 합의를 하든지 이 문제가 국제적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두 차례의 유엔 특별보고서를 포함해 국제적으로 계속 다뤄져 왔고 국가가 개입해서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행동을 조직적으로 한 것은 전쟁범죄이고 ‘인류에 대한 범죄’이므로 일본의 법적 책임 인정에 기초한 사죄·배상·책임 규명이 필요하다는 권고가 나와 있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국제적으로 계속 다뤄나가되, 양자적 해결책으로서 2015년 합의를 어떻게 할 것이냐의 결정에 직면해 있다고 하겠다. 누가 결정을 해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외교는 길고 포괄적인 시각으로 국익을 봐야 한다는 원론으로 돌아갈 것을 권하고 싶다.

오준 전 유엔대사·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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