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뒷북경제] 체감경기 팍팍한데 금리 올리는 이유는



한국은행이 지난달 30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17개월 동안 사상 최저치였던 기준금리를 1.25%에서 1.5%로 0.25%포인트 올렸습니다. 6년5개월 만의 첫 금리 인상입니다. 한은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뉴노멀’이 됐던 초저금리 시대를 끝낼 준비에 나선 겁니다. 미국, 영국, 유로지역 등 주요국 중앙은행이 제로 수준까지 낮췄던 금리를 올리고 보유자산을 축소하면서 한껏 풀어놨던 돈줄 조이기에 들어간 가운데 한은은 아시아 국가들 중 처음으로 이 행렬에 동참했습니다.

배경에 이목이 쏠립니다. 물론 경기 회복세만 보면 금리를 올리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다.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3년 만에 3%대를 훌쩍 넘어설 것이 확실시되는 만큼 더 이상 ‘저성장 탈출’을 위해 초저금리를 유지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주열 한은 총재가 금통위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앞으로 국내 경제는 글로벌 경기 교역 확대, 대중 교역 여건 개선에 힘입어 잠재성장률 수준의 성장세를 나타낼 것”이라며 “그동안 저성장 저물가에 대응하여 확대해온 통화정책 완화의 정도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인상을 결정했다”고 한 말은 이런 뜻입니다.


◇체감경기는 아직 찬 바람에 물가도 지지부진한데…

그래도 일각에선 여전히 고개를 갸웃합니다.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는데 내 삶은 여전히 팍팍하기 때문입니다. 취업은 바늘구멍이고 어렵게 취직해도 월급은 안 오르는데 한은의 금리 인상으로 이자만 늘어날 판이니 이해가 안 된다는 아우성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사실 이런 경제지표와 체감경기 간의 괴리는 여러 경제 전문가들은 물론 금리 인상을 결정한 한은 금통위원들도 걱정해온 문제입니다. 10월 금통위 의사록을 보면 일부 금통위원들은 “세계 경제 회복세와 수출 및 설비투자 급증에 기댄 지금의 경기 성장세가 내수와 물가에까지 확산될 것인지를 더 지켜봐야 한다”며 “내수 측면에서 민간소비의 회복세가 더 확실해질지, 이에 따른 체감경기와 고용 측면의 영향에 대해 추가적인 점검이 필요하다”는 논리로 금리 인상에 반대하기도 했습니다.



금리를 올릴 만큼 경기가 회복세라는데 물가는 올라오지 않는 점도 이상합니다. 한은의 제1목표는 ‘물가 안정’인데 현재 물가상승률은 한은이 정한 중기 물가 안정 목표(2%)에 한참 못 미칩니다.

1일 통계청에 따르면 11월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3%에 그쳤습니다. 올해 최저치입니다. 분기 경제성장률이 7년여 만에 최고치인 3.8%(전년 동기 대비)였던 7~9월에도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지수 상승률은 1.4~1.5%에 불과했습니다. 밥상물가, 외식물가 급등으로 국민들이 체감하는 물가는 높았지만 가계와 기업의 수요 증가에 따른 물가 상승 압력은 여전히 낮다는 뜻입니다.


수요 압력에 따른 물가 상승은 일자리 여건이 좋아지고 임금이 자연스럽게 오르면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수요 압력이 낮다는 말은 아직 내수, 고용 등 전반적인 경제 상황이 고르게 좋다고 보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한은에 따르면 올해 들어 8월까지 우리나라 실질임금 상승률은 0.3%에 불과해 미국(0.7%), 유로지역(1.2%)에 비해 크게 낮았습니다. 고용 시장도 여전히 차갑습니다. 지난해 평균 3.7%였던 실업률은 올해 상반기 3.8%로 소폭 올랐습니다. 9월 이후 소폭 나아지는 듯했지만 10월중 취업자수 증가폭은 전달에 비해 다시 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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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금통위에서 유일하게 금리 동결을 주장한 조동철 금통위원도 이런 이유로 금리 인상에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보입니다. 조 위원은 평소 “통화 정책의 궁극적 목적은 물가 안정“이라며 ”우리나라 통화 정책은 우리나라 경기 및 인플레이션 상황과 전망을 기초로 수행돼야 한다”고 강조해 왔습니다.

◇그래도 금리 인상, 왜?

그런데도 결국 한은이 금리 인상을 단행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역시 가계부채와 집값 때문이라는 게 중론입니다. 이 총재는 금리를 올린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우리 경제가 견실한 성장세를 지속하는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그대로 유지할 경우 통화정책의 실질적인 완화 정도가 더 확대되면서 금융 불균형 누적 위험이 커질 수 있단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습니다. 금융 불균형이란 시중에 지나치게 많은 돈이 풀리면서 가계와 기업 부채가 늘고 주식,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이 과도하게 오르는 현상을 뜻합니다. 한 마디로 한은이 역대 최저 수준의 금리를 유지하는 동안 가계빚이 빠르게 늘고 집값이 지나치게 올랐으니 이제 이를 바로잡아야겠다는 얘기입니다.

김소영 서울대 교수는 “낮은 물가상승률만 보면 금리를 안 올리는 게 맞지만 한은이 물가나 경기과열보다는 가계부채, 부동산가격,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자본유출 등 금융 안정을 위해 올린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앞으로 또 위기가 닥칠 때에 대비해 통화정책 여력을 확보하기 위함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1,4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와 부동산 거품 우려를 감안해 경제가 좋을 때 금리를 올려놓을 필요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현재의 경기 회복세를 견인하고 있는 수출이 꺾일 수 있다는 걱정도 꾸준히 나오는 상황입니다. 오석태 소시에테제네랄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앞으로 경기가 나빠졌을 때 한은이 다시 금리를 내릴 수 있으려면 지금 경기가 좋을 때 금리 정상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저금리에 익숙한 경제주체들에게 ‘값싼 돈’의 시대는 끝났다는 신호를 주려는 의도도 있습니다. 이 총재는 1일 시중은행장들과의 금융협의회에서 “한은은 국내 경기 회복세가 건실해질 경우 통화정책 완화정도의 조정이 필요할 것임을 시사해 왔고 이는 그동안 저금리에 익숙해진 경제주체들의 행태에 어느 정도 변화가 있어야 함을 미리 알리기 위해서였다”면서 “가계는 차입이나 저축 또는 투자 등에 관한 의사결정에 있어 이전과는 달라진 환경에 적응해나가야 될 것”이라고 당부했습니다. 앞으로는 빚 내고 투자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는 경고인 셈입니다.

빈난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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