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미래 노인정책에 맞는 '베이비 부머' 통계 개발하겠다

[서경이 만난 사람] 황수경 통계청장

데이터가 '원유'라면 통계는 '정유'...자료, 잘 가공해야 가치 커

주기 단축해 월간·분기 단위로 '산업별 일자리 통계' 내년 공표

'통계데이터센터' 내년 하반기 구축...민간기업서 활용 늘어날 것

황수경 통계청장황수경 통계청장


/대담=이현호 경제부 차장 hhlee@sedaily.com

“데이터가 4차 산업혁명의 원유(原油)라면 통계는 정유(精油)입니다.”


학자에서 문재인 정부 첫 통계행정 수장으로 변신한 황수경(55·사진) 통계청장은 통계의 개념을 이같이 소개했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초연결·초지능 기술은 모두 데이터에서 출발한다.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 맞설 수 있었던 것도 무수한 바둑 기보, 즉 빅데이터 학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중요한 데이터를 잘 뭉치고 가꿔 활용하기 좋은 상태로 가공하면 훨씬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 황 청장은 “정부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고용보험 데이터베이스(DB)나 국세청의 납세자료, 건강보험 자료 등 어마어마한 양의 행정자료를 만들어낸다”며 “하지만 자료는 어디까지나 자료일 뿐 통계로 가공하면 훨씬 쓰임새가 커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서울시 심야버스 노선을 만든 과정을 예로 들었다. 서울시는 늦은 밤 사람들의 전화·문자 등 통신 데이터를 토대로 실시간 유동인구를 파악해 노선을 만들었다. 황 청장은 “다양한 데이터를 의미 있는 통계로 변환하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며 “통계청이 데이터 허브(네트워크의 중심) 역할을 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그 대표적인 정책이 내년 하반기 대전·세종·서울 3곳에 설치할 예정인 데이터플랫폼 ‘통계데이터센터’다. 국책연구기관이나 민간기업 등 연구진이 통계데이터센터를 찾으면 △인구·가구 △사업체·기업체 △주택·건물 △경제활동 등 4대 통계등록부의 기초자료와 각종 통계를 융합해 원하는 결과 값을 뽑을 수 있다. 이를 기반으로 정책을 연구하고 마케팅 전략도 짤 수 있다. 주로 통계를 소비하다 직접 통계를 생산하는 입장으로 바뀐 황 청장을 3일 대전 집무실에서 만나 앞으로 통계행정을 어떻게 이끌어갈지 들어봤다.

황 청장은 새 정부가 추진하는 일자리 늘리기와 소득주도 성장 등 국정과제를 지원하기 위한 통계도 적극적으로 개발할 생각이다. 정책에 ‘통계’라는 과학을 입혀 정밀도와 효과성을 최대한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내년에 새로 개발·발표할 예정인 대표적 통계가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를 대상으로 한 중장년층 통계다. 그는 “현재 노인들의 모습을 보고 베이비부머 정책을 설계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제 막 은퇴하기 시작한 베이비부머는 1988년에 도입된 국민연금의 제도적 수혜를 받는 등 어느 정도 복지 안전망이 갖춰진 상태에서 노년층에 편입된다. 이전 노인세대가 제도권 혜택을 거의 못 받으며 높은 빈곤율을 보인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난다. 황 청장은 “중장년층의 일자리 현황과 변동, 주택소유 여부, 공적연금 가입 현황을 분석함으로써 이들의 맞춤형 일자리 정책이나 노후 소득보장 정책의 기초를 다지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자리 관련 통계도 개선한다. 먼저 사회보험이나 과세 내역 등 행정자료 입수 주기를 단축해 월간·분기 단위로 산업 중분류(97가지) 수준의 일자리 동향을 볼 수 있는 ‘산업별 일자리 동향 통계’를 내년부터 공표한다. 또 일자리 창출 가능성이 큰 부분을 집중 지원하기 위해 전체 기업을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구분한 기업규모별 일자리 통계를 최초로 작성하고 일용직을 포함한 임금근로자 소득분포도 분석하기로 했다. 현재 일자리행정통계는 연 1회 공표하며 산업 대분류(20가지) 수준까지만 나누고 있지만 내년 하반기부터는 더 자주, 자세한 통계가 나와 정책 대응이 빨라질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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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의 ‘수’만큼 ‘질’도 중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고용의 안정성과 근로조건, 일과 삶의 조화 등 고용의 질을 평가할 수 있는 지표도 올해 안에 만든다. 황 청장은 “올해 지표를 개발해 가중치를 조절하고 내년에는 시험 통계를 낸 뒤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검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사노동 가치를 측정하는 것도 통계청의 주요 과제다. 현재 국내총생산(GDP)에서 가사노동은 잡히지 않는다. 이웃한 두 집이 서로 식구 한 명씩을 보내 상대방 집안일을 해주고 일당을 받으면 두 명 몫의 가사노동이 GDP에 포함되지만 각자 자기 집안일만 하면 GDP에 미치는 영향은 제로(0)다. 분명히 가치를 생산했음에도 GDP가 반영되지 못하는 한계를 극복하고자 통계청은 음식 준비나 세탁 등 가정관리, 가족·가구원 돌보기 등 가사노동의 범위에 해당하는 대상을 선정해 시간과 적정 임금을 적용, 경제적 가치를 측정할 계획이다. 이 결과 역시 내년 하반기에 공개한다. 황 청장은 “새로운 통계에 대한 아이디어는 무궁무진한데 예산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우선 알짜 통계를 갖추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통계청이 단순히 통계 수치만 공개하는 소극적 역할을 뛰어넘어 적극적인 분석을 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황 청장은 “통계청은 줄곧 생산자 입장의 통계만 내놓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좀 더 생동감이 필요하고 중장기적으로 숫자 너머의 현상들을 읽어내 서비스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방대한 자료의 속성을 잘 아는 사람은 최일선에 있는 통계 생산자다. 이들이 가장 정확히 보고 분석할 수 있는 만큼 국가통계의 심층 분석 연구활동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런 맥락에서 내년부터 이슈 분석 형태의 계간지를 발간하기로 하고 한창 첫 회분을 공들여 작업하고 있다. 황 청장은 “기존에는 통계학 중심의 저널만 있었는데 포괄적인 경제사회적 주제를 분석한 콘텐츠를 만들 것”이라며 “통계청의 전문성과 정보력을 발휘할 기회”라고 강조했다.

황 청장은 “통계청이 생산한 통계는 옳다는 신뢰가 첫 번째”라며 “중립이 지켜져야 하는데 밖에서 특정한 요구가 있을 수 있는 만큼 내가 바람막이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통계청이 외압에 흔들리면 정권의 입맛에 맞는 통계만 내는 식으로 움직일 수 있는 만큼 이런 여지를 차단하겠다는 얘기다. 황 청장 스스로 이 논란의 중심에 선 적도 있다. 2011년 10월 실업률이 9년 만에 최저치인 2.9%를 기록하자 정부는 “고용 대박”이라며 성과를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그러나 당시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으로 있던 황 청장은 단시간 취업자 증가에 따른 착시를 지적했다. 또 국제노동기구(ILO) 기준으로 잠재실업률을 구하면 실제 실업률이 4배 이상 높아진다며 정부 통계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국책연구원 소속 연구자의 문제 제기에 기획재정부나 통계청·KDI 모두 난감해 한 것은 당연한 일. 황 청장은 “그 사건 이후 통계청에서 자료 받기가 쉽지 않더라”라고 말했지만 당시 경험은 온전히 남아 ‘외풍을 막겠다’는 지금의 굳은 신념이 됐다. 어쩌면 이런 연유로 새 정부와 직접적 인연이 없는 그가 통계청장에 오른 것은 아닐까. 황 청장은 “(내 성향 등을) 다 알고 임명했을 테니 소신껏 하겠다”며 재차 의지를 다졌다.

황 청장은 통계청 조직이 보다 독립적으로 힘을 지닐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각 부처에서 통계를 생산하는 분산형 시스템상에서는 통계청의 조정 역할이 중요하다”며 “현재 부총리 중심의 국가통계위원회만으로는 각 정부 전체를 이끌어가기에 벅찬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통계청 안팎에서는 현재 기재부 외청이 아닌 총리 산하 통계처로 승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그는 “당장 통계청에 우군이 부족하지만 더 신뢰를 얻고 독립적인 위상에 걸맞은 조직이 된다면 다양한 역량을 펼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리=임진혁기자 liberal@sedaily.com 사진=송은석기자

약력 △1963년 전북 전주 △1982년 서울 서문여고 졸업 △1988년 서울대 화학공학 학사 △1993년 숭실대 노사관계대학원 석사 △2001년 뉴욕주립대 경제학박사 △1992~2010년 한국노동연구원 △2005~2007년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2010~2017년 한국개발연구원 △2007~2017년 중앙노동위원회 공익위원 △2015~2017년 산림청 산림정책평가위원 △2017년~ 통계청장

세종=임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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