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조원의 이익을 내는 금융회사에 큰 게 아니지 않느냐고 치부할 수 있지만 외국인 주주 입장에서는 정부의 정책 리스크가 그만큼 크게 와 닿고 있다는 것이다. 3일 금융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소액연체자 빚 탕감 정책 추진을 위해 출연금을 내게 되면) 주주가치 훼손 여부를 놓고 외국인 주주가 문제 삼아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외국인 투자가들이 70%를 넘는 국내 금융지주의 경우 정부 압박으로 수십억원을 출연하는 것에 대해 기업가치 훼손 논리를 앞세워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통신비 인하 정책으로 통신사 외국인 주주들의 소송 우려 논란에 휩싸인 것과 같은 맥락이다.
앞서 정부는 금융회사의 출연금과 시민·사회단체의 기부금으로 비영리 재단법인을 설립해 76만2,000명의 장기 소액채권(공공기관 12만7,000명, 민간 금융회사 63만5,000명)을 매입·소각하기로 했다. 기부금을 거의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민간금융 회사의 출연금으로 충당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매입 대금은 민간 금융회사들이 보유한 소액장기연체채권 원금(2조6,000억원)의 1%인 260억원 규모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은 장기 연체채권 발생에 대해 “상환능력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금융회사의 책임”이라는 논리를 제시하고 있지만 금융회사의 출연금을 동원한 것은 혈세 투입에 따른 비판 여론을 최소화하기 위한 차원이라는 게 대체적인 해석이다.
해외 투자가들이 최근 국내 금융사의 해외 투자설명회(IR)에서 북핵 리스크만큼이나 최저임금 인상 같은 정부 정책 리스크에 대한 불확실성에 관심을 보이면서 정부 리스크가 커지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정부가 나서서 민간으로부터 돈을 받는 것에 대해 자발적 기부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고 사실상의 분담금으로 해석돼 후유증이 클 것”이라며 “외국인 주주 입장에서는 근거를 놓고 충분히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