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영화 '재심' 흥행의 숨은공신 '문화보증'

기보 문화콘텐츠 평가모형 개발

자금난 겪는 제작사 '보증 지원'

13년간 영화·뮤지컬·드라마 등

530개 콘텐츠에 3,740억 도움

0515A16 문화




지난 2월 개봉한 영화 ‘재심’은 ‘박근혜 탄핵’으로 촛불이 뜨겁게 타올랐던 시대적 분위기와 맞물려 주목을 받았다. 2000년 익산 ‘약촌 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을 소재로, 살인자로 지목된 15살 소년이 억울하게 살인범으로 몰려 10년을 감옥에서 보낸 이후 재심을 청구하는 내용이다. 관객 200만명을 가뿐히 넘기면서 실화 소재 영화 중에선 보기 드물게 흥행작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영화 제작 과정은 녹록하지 않았다. 변변한 톱 배우조차 없는 데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흥행 코드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우여곡절 끝에 중소투자사인 오퍼스픽쳐스와 손잡고 촬영에 들어갔지만, 투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도중 하차의 고비를 여러 차례 넘겼다. 하지만 기술보증기금이 손을 내밀면서 영화 ‘재심’은 빛을 볼 수 있게 됐다. 총 제작비 53억원 중에서 10억원을 보증 받으면서 급한 불을 끄고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

영화 제작사인 이디오플랜의 윤기호 대표는 “완성도 높은 영화 제작은 물론 흥행에도 자신 있었지만 투자사들은 리스크가 크다며 손사래를 쳤다”면서 “결국 초기 투자금이 바닥나면서 영화 촬영이 중단될 수 있는 위기의 상황까지 왔다”고 말했다. 이어 “기보로부터 10억원을 보증 받아 급한 불을 끄고 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다”면서 “자본의 논리로 움직이는 영화 시장에서 손익만 따졌으면 투자 결정을 하기 어려웠겠지만, 순수하게 작품성을 보고 지원에 나서준 기보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뮤지컬 ‘에어포트 베이비’의 한 장면.뮤지컬 ‘에어포트 베이비’의 한 장면.


뮤지컬 ‘에어포트 베이비’는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 애틀란타로 입양된 청년 조쉬 코헨이 고국을 방문해 자신의 뿌리를 찾는 여정을 그린 박칼린 감독의 창작 뮤지컬이다. 지난 201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창작뮤지컬 우수공연으로 선정한 데 이어 지난해 아트원씨어터에서 초연됐다.


박칼린 감독은 창작 뮤지컬 ‘명성왕후’, ‘오페라의 유령’ 등 굵직한 공연에 연출가로 참여하면서 유명세를 떨친 터라 공연제작사인 포킥스엔터테인먼트는 투자 유치에 자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하지 않았다. 올 들어 사드 여파로 공연계가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뮤지컬, 그것도 창작뮤지컬이 투자 유치를 받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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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지난 9월 기보의 지원을 받아 이 작품은 내년 1월 28일까지 대학로 드림아트센터에서 관객을 만날 수 있다. 전수양 포킥스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세련된 음악에다 작품성도 인정 받으며 시장 반응은 매우 호의적이었지만 실제 투자 유치 단계에서 어려움이 있었다”면서 “공연계가 전반적으로 투자 기근 현상에 시달리며 대형 공연들도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투자를 받게 된 것”이라고 돌아봤다.

이밖에도 인기리에 방영됐던 TV 드라마 ‘도둑놈, 도둑님’과 ‘비밀의 숲’, 뮤지컬 ‘나폴레옹’, 온라인 게임 ‘베틀 그라운드’ 등 최근 주목 받은 문화 콘텐츠들 역시 기보의 지원을 받은 작품들이다. 기보는 문화콘텐츠 제작기업들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지난 2004년부터 문화콘텐츠 산업의 특성을 반영한 평가모형을 개발해 문화산업완성보증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는 제작사가 문화콘텐츠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자금을 원활히 조달할 수 있도록 금융기관에 대해 보증서를 발급해주고 문화콘텐츠가 완성된 후 판매대금으로 대출금을 상환하는 제도다.

특히 문화콘텐츠 기업을 지원할 때 가장 큰 어려움은 해당 기업의 재무상황이나 신용상태가 열악한 경우가 많아 일반적인 심사 기준으로는 지원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제조업 중심의 평가 시스템과는 다른 콘텐츠 중심의 전문 평가 모형을 개발한 것이다.

현재 기보는 온라인 게임, 방송 드라마, 극장 영화, 방송 애니메이션, 캐릭터, 모바일게임, 뮤지컬 공연 등 각 콘텐츠별로 특화한 11개의 평가 모형을 운영하고 있다. 실제로 문화산업완성보증으로 지원된 콘텐츠 중 재무나 신용상태가 상대적으로 열악한 기업은 전체의 56%(9월말 현재)를 차지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일반적인 평가 시스템으로 지원받을 수 없었던 상당수 문화콘텐츠 제작기업들이 혜택을 입었다는 얘기다. 기보는 지난 2009년 제도가 본격 시행한 이후 지난 9월말 현재 532개 문화콘텐츠, 3,747억원을 지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보는 우수한 콘텐츠 제작 능력과 기술력을 가진 신규 기업을 발굴하기 위해 지난 8월 완성보증 지원 전담조직인 ‘문화콘텐츠금융센터’를 경기 지역으로 확대 설치했다. 올해 말에는 부산 지역에도 마련할 계획이다.

김규옥 기보 이사장은 “문화콘텐츠 산업은 부가가치가 크고 일자리 창출효과가 높은 산업으로 우리 경제의 성장 동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며 “기보는 잠재력이 있지만 시장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문화콘텐츠를 세심하게 챙겨 중장기적으로는 한류 킬러 콘텐츠로 육성하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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