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가 되려는 자, 생존 게임은 지금부터다’
최근 주요 그룹 임원 인사에서는 오너가(家) 3·4세들의 본격적인 경영 참여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재벌가 자녀들이 경영권 승계를 차근차근 준비 중인 셈입니다. 하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일반인의 시선은 차갑습니다. 입사부터 임원을 달기까지 기간이 너무 짧아 능력 검증이 덜 됐다는 것입니다.
실제 재계 3·4세들은 창업자는 물론 오너가 2세들보다 고속승진 중입니다. 지난 9월 CEO스코어가 총수가 있는 100대 그룹 가운데 오너 일가가 임원으로 근무 중인 77개 그룹의 승진 현황을 조사한 결과 재계 3·4세들은 평균 29.9세에 입사해 33.0세에 임원이 됐습니다. 30.1세에 입사해 4.7년 후 임원이 된 재계 1·2세대보다 1년 6개월 빨리 승진했습니다. 또 이전 세대와 달리 대부분 해외 유학파이다 보니 한국 경영 현실을 잘 모른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특히 최근 재벌 총수 3·4세들의 일탈과 갑질이 문제입니다. 술을 먹고 난동을 피우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사례가 나오다 보니 “금수저 물고 태어나지만 않았으면 중소기업 취업도 못했을 것”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옵니다. 물론 일부 인사에 불과하겠지만 국민들의 부정적인 인식은 경영권 승계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환경도 녹록지 않습니다.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나 공정거래위원회의 공익재단 조사 등에서 보듯 재벌들이 경영권을 자녀들에게 물려주는 게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능력이 없는 인사들이 그룹 수장을 맡을 경우 한국경제는 물론 그들에게도 불행의 씨앗이 됩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30대 그룹 가운데 절반 가량이 공중분해된 게 단적인 사례입니다. 과연 재계의 차세대 주자들이 그들 앞에 놓인 시험대를 성공적으로 통과하고 30년 뒤에도 생존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는 대목입니다. 그럼 올해 본격적인 경영권 승계과정에 돌입한 이들은 누가 있을까요?
현대중공업그룹 임원 인사에서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손자이자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인 정기선(35) 현대중공업 전무가 2년 만에 부사장으로 승진하고 현대글로벌서비스의 대표까지 맡았습니다. LG그룹 인사에서는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외아들 구광모(39) 상무가 전무 승진을 하지 않고 LG전자의 신성장 사업 중 하나인 B2B사업본부 ID사업부장을 맡게 됐습니다. 시장을 개척하고 실적을 내야 하는 신사업분야로의 발령은 경영 능력을 먼저 검증받으라는 의도로 보입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장녀인 이경후(32) CJ 미국지역본부 마케팀당당 상무대우의 경우 부장직을 단지 2년 만인 지난 3월 상무대우가 된 데 이어 불과 8개월 만에 ‘대우’ 꼬리를 떼고 정식 상무로 승진했습니다. 구자열 LS그룹 회장의 장남 구동휘(35) LS산전 이사는 1년 만에 상무로 승진했고, 구자명 전(前) LS니꼬동제련 회장의 아들 구본혁(40) LS니꼬동제련 전무 역시 3년 만에 부사장 자리에 올랐습니다.
한국타이어그룹은 경영권 승계를 완성했습니다. 고(故) 조홍제 효성 창업주의 손자이자 조양래 한국타이어그룹 회장의 장남인 조현식(47)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대표이사 사장이 한국타이어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한 것입니다. 전문경영인이 맡아오던 부회장직을 오너 3세가 맡기는 처음입니다. 동생인 조현범 사장은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최고운영책임자 겸 한국타이어 경영운영본부장(사장)직에서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해 업무 영역을 확장했습니다.
/정순구·이종호기자 soon9@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