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예루살렘=이스라엘 수도"…'성역'에 불붙인 트럼프

"美 대사관, 예루살렘으로 이전"

요르단·이집트 등 4개국에 통보

유대·이슬람 화약고에 기름 부어

중동내 우방 사우디도 거센 반발

EU·유럽 등도 반대 입장 표명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5일(현지시간) 베들레헴 광장에서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하기로 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사진을 불태우며 시위하고 있다.  /베들레헴=AFP연합뉴스팔레스타인 주민들이 5일(현지시간) 베들레헴 광장에서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하기로 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사진을 불태우며 시위하고 있다. /베들레헴=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70년 가까이 국제사회의 ‘뜨거운 감자’였던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공식 인정하기로 하면서 중동에 거센 후폭풍이 예상된다.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수도 인정은 복잡하게 뒤얽힌 중동 이슈 중에서도 가장 민감한 사안의 하나로 아랍권과의 충돌을 우려해 미국 역대 대통령 중 누구도 결단을 내리지 못했으며 유럽연합(EU)과 유엔 등 국제사회도 일관되게 반대 의사를 밝혀왔다. 예루살렘은 기독교와 이슬람교·유대교의 성지여서 문명충돌의 휘발성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지역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공식 인정하고 텔아비브에 위치한 미국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작업에 착수한다는 계획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요르단·사우디아라비아·이집트 정상들에게 직접 전화해 통보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6일 백악관에서 이 같은 방침을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0715A10 예루살렘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건국 이후 냉전시대의 베를린처럼 서쪽은 이스라엘, 동쪽은 요르단 통치지역으로 나뉘었으나 1967년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하며 동예루살렘까지 점령해 지금까지 실질적으로 지배해왔다. 이후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이 수도임을 주장했지만 아랍 국가들은 이를 결코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왔으며 독립국 건설을 목표로 이스라엘과 평화협상을 진행 중인 팔레스타인은 동예루살렘을 미래 수도로 상정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동맹국인 미국은 유대계의 강력한 로비로 1995년 의회가 ‘예루살렘대사관법’을 제정했지만 대통령들이 외교적 민감성과 사안의 폭발성을 고려해 6개월마다 유예명령을 내리면서 주미 이스라엘대사관을 행정수도인 텔아비브에 유지해왔다. 예루살렘의 지위 문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평화협상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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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이 70년가량 지켜진 미국의 중동 외교정책의 한 축을 뒤집는 것은 지난 대선 때의 주요 공약을 이행하면서 지지층을 결집해 날로 커지는 ‘러시아 커넥션’ 의혹을 돌파하려는 국내 정치적 의도라고 미 언론들은 분석했다.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수도 인정은 공화당 주류인 기독교복음주의 세력의 숙원 가운데 하나지만 팔레스타인과의 평화협상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이스라엘조차 필요성이 급박하다고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역사와 종교를 간과하고 일방적 결정을 내리자 중동은 벌써 들끓기 시작했다. 당장 팔레스타인뿐 아니라 중동 내 미국의 최대 우방인 사우디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이 파탄 나고 그간 들인 노력이 물거품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며 반대 목소리를 냈다. 터키는 이스라엘과의 단교 가능성까지 언급했으며 이슬람 무장조직 하마스는 새로운 인티파다(주민봉기)를 위협하며 테러 등 유혈사태를 시사했다.

중동 지역의 반미 분위기가 고조되자 미 국무부는 이날 자국민의 이스라엘 여행에 대해 ‘주의’ 경보를 내렸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보도했다. 이스라엘 주변 분위기가 극도로 험악해지면서 미국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도 6개월가량 유예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보안이 갖춰진 적절한 대사관 부지 물색과 건물 설계에 “몇 년이 걸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유엔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도 트럼프 정부의 ‘독단적 행동’에 대해 중동 정세를 더욱 꼬이게 하고 악화시킬 뿐이라며 분명한 반대 입장을 보였다. 스테판 두자릭 유엔 대변인은 “우리는 항상 예루살렘 문제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두 당사국 간 직접협상으로 해결돼야만 한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

손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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