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예산·세법에 드러난 기업정책] 법인세 인상 대상 줄였지만...과세정보 열람 등 곳곳 '가혹한 조치'

국조 비공개회의서 열람 허용...경영활동 위축·정보 유출 우려

전기차산업기반구축·ESS 등 신기술 관련 사업예산도 축소

"대기업 지원·세제혜택 꺼려...스스로 경제에 울타리치는 격"





지난 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예산과 세법 개정안에는 2,000억원 이상이던 법인세 인상 대상을 3,000억원으로 축소한 것을 비롯해 정부안보다 기업을 배려한 조치가 눈에 띈다. 실제 국회는 대기업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이월결손금 공제 한도도 내년 기준 사업연도 소득의 60%이던 것을 70%로 10%포인트 올리고 논란이 됐던 적격합병·분할 시 고용승계 사후관리 요건도 ‘3년 이내’를 빼면서 기업의 부담을 줄여줬다. 중소기업 모태펀드 2,000억원을 새로 예산안에 넣고 코스닥 상장기업의 세제혜택도 늘렸다.


하지만 완화가 다가 아니다. 곳곳에 대기업 연구개발(R&D) 세액공제 축소 같은 지뢰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예산과 세제안을 보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가르고 대기업의 부담을 늘린 사례는 곳곳에 있다.

당장 R&D 세액공제 축소는 대기업의 부담으로 돌아간다. 기획재정부가 제출한 세법 개정안에서는 대기업 R&D 비용에서 당기분만 세액공제를 줄이기로 했지만 국회 논의 과정을 거치면서 증가분의 30%였던 세액공제 한도가 25%로 쪼그라들었다. 그 결과 대기업은 연 300억원의 추가 부담을 지게 됐다. R&D는 일자리를 창출하고 기업의 미래 먹거리를 만들어내는 핵심 분야지만 이 분야 과세를 되레 강화한 셈이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법인세를 35%에서 20%로 낮추고 일본 아베 정부도 설비투자를 적극적으로 하는 기업에 실효설비세율을 25%까지 내려주기로 한 것과 비교하면 국내 기업에는 가혹한 조치라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재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경쟁국들은 법인세를 낮추는데 우리는 법인세 대상을 줄여주는 것처럼 하면서 실제 부담은 또 늘리고 있다”며 “단순히 법인세만으로 경영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중장기적인 기업 경쟁력은 후퇴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이 확정된 것도 기업들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큰 기업에만 과도한 세금을 물린다는 것은 거꾸로 보면 ‘기업을 키워봤자 좋을 게 없다’는 인식을 확산시킬 수 있다”면서 “오히려 기업 성장을 지원해 보다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도록 하는 게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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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 과세정보 열람이라는 폭탄도 있다. 국회는 이번에 세무공무원의 과세정보 비밀유지 의무 예외사유에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따른 조사위원회가 조사위원회의 의결로 비공개회의에 요구하는 경우를 추가했다. 국정조사에서 개별 과세정보를 요구하면 비공개회의에서 관련 자료를 열람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특정 기업의 과세정보가 공개되는 일이 급격하게 증가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의원은 면책특권이 있어 열람자료를 회기 중에 공개하면 이를 막을 방법이 마땅치 않다. 이 경우 기업의 경영활동이 위축되고 개인정보 노출에 따른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다. 시작은 국정조사지만 결과적으로 국정감사로 정보 공개가 확대되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있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비공개회의에서 열람하는 것이어서 기본적으로 비밀유지를 해야 한다”면서도 “국회의원은 면책특권이 있고 개별 납세정보가 어떤 식으로든 외부로 흘러나갈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따른 부작용과 기업의 부담이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기조는 예산 분야도 마찬가지다. 국내 건설경기와 맞물려 있는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는 국회의 일부 증액에도 큰 폭의 삭감을 피하지 못했다. 당초 정부는 지난해 22조1,000억원이던 SOC 예산을 17조7,000억원으로 4조4,000억원이나 줄였지만 국회에서 1조3,000억원 늘렸다. 최종적으로 내년도 SOC 예산은 19조원으로 편성됐지만 이마저도 감소율이 무려 14.2%에 이른다. 반면 보건·복지·고용예산은 국회에서 1조5,000억원이 줄었지만 전년 대비 증가율이 11.7%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일부 기업 관련 사업예산도 감소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전기차산업 기반 구축과 전시산업 경쟁력 강화 지원사업, 초절전 발광다이오드(LED), 에너지저장장치(ESS) 기술 개발사업(R&D), 신재생에너지 핵심기술 개발(R&D)이 삭감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이들 사업 축소액만 약 116억원이다. 산업부 전체적으로는 1,704억원 늘어나고 852억원 감소했지만 신규 먹거리에 대한 대대적인 증액이나 지원은 뚜렷이 나타나지 않는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큰 틀에서 보면 대기업에 대한 예산지원이나 세제혜택은 꺼리는 게 새 정부의 분위기”라며 “기업을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가르고 혁신성장도 중소기업만을 강조하는 것은 스스로 경제에 울타리를 치는 격”이라고 답답해 했다.

/세종=김영필기자 한재영기자 susopa@sedaily.com

김영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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