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공무원 5년 차인 A씨에게 처음 출동했던 사고 현장은 아직도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지난해 소방서 내근을 지원한 뒤 행정업무를 담당해 현장 출동은 하지 않지만, 당시의 끔찍한 장면이 떠오르는 날에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 사고 현장 출동 경험이 많은 베테랑 소방공무원들에게도 버겁게 느껴지기는 마찬가지다. 15년 차 소방관 B씨는 “지금도 사람이 많이 다치거나 숨진 현장에 출동한 날에는 술을 마셔야 잠자리에 들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현장 경험이 늘면서 정식적인 충격의 강도는 줄었지만 여전히 힘든 것이 사실”이라며 “후배들과 같이 일하면서 현장에서 받은 충격을 겉으로 드러낼 수도 없어 술에 의지하는 경우가 더 많아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각종 사건·사고 현장에 출동하는 일이 다반사인 소방공무원들 가운데 상당수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불면증, 우울증, 알코올성 장애 등을 앓고 있다.
충북도 소방본부가 지난 5월부터 8월까지 충북 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에 의뢰해 소방공무원 1,377명의 정신건강에 대해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1.5%인 21명이 PTSD 위험군으로 분석됐다. 우울증을 겪는 소방공무원도 2.6%인 36명으로 집계됐으며 3.8%(53명), 6.0%(83명)는 각각 불면증과 알코올성 장애 등의 위험군으로 나타났다.
건강검진 결과는 더 좋지 않았다. 지난해 건강검진에서 소방공무원 1,548명 중 PTSD와 우울증 위험군은 올해 충북 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 조사와 비슷한 결과인 1.7%(27명), 2.9%(46명)로 집계됐고 수면장애는 무려 12.9%(204명)로 나타났다. 잦은 음주는 15.8%(241명)나 됐다.
소방공무원들의 정신건강에 대한 ‘적신호’는 전국적으로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지난해 전국 소방공무원 4만1,65명의 2.2%와 3.8%가 사고 현장에서 겪은 트라우마로 인해 PTSD, 우울증에 시달릴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수면장애와 잦은 음주 역시 각각 15.1%, 15.4%였다.
소방관 처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충북도 소방본부는 지난달 21일 충북 광역·기초 정신건강복지센터와 협약해 소방공무원들의 정신건강 지키기에 돌입했다. 협약에 따라 광역·기초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지난달 구조대장 등 최일선에서 일하는 관리자 등을 대상으로 동료의 상황을 파악하고 조치를 할 수 있도록 심리상담 기법에 대한 교육을 진행했다. 다음 달부터는 소방본부 전 직원이 정신건강 상담과 자살예방 등을 위한 생명 지킴이 양성교육도 시행 할 방침이다. 충북도 소방본부 관계자는 “참혹한 현장을 반복적으로 보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며 “소방관들의 지친 심신을 회복할 수 있도록 근무 여건을 개선하고 전문 치료병원을 설립하는 등 정책적인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연주인턴기자 yeonju1853@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