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준비생 이진영(가명)씨는 얼마 전 최종면접을 본 한 대기업으로부터 ‘예비합격 후보’ 통보를 받았다. 회사는 추가 결원이 발생하면 전화로 연락하겠다는 공지만 남겼을 뿐 예비 순번도 통보 날짜도 공지하지 않았다. 이씨는 “지난해까지 없던 예비합격후보제도가 올해 새로 생겨서 몇 명이나 추가 합격할 수 있는지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다”며 “최종 입사일까지 3주 넘게 남았는데 그때까지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못하고 휴대폰만 쳐다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푸념했다.
주요 기업들이 신입사원 공채에서 ‘예비합격제도’를 앞다퉈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예비합격 순번이나 공지 기한 등을 밝히지 않고 유선 통보 방침만 알려주는 사례가 많아 취준생들이 휴대폰만 쳐다보며 냉가슴을 앓는 실정이다.
8일 대학가와 업계에 따르면 신입사원 공채에서 예비합격제도를 시행한 기업은 효성·CJ제일제당·동서식품·대림산업·대한항공 등이며 이 제도를 도입하는 기업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취준생들은 공채 과정에서 기업들이 대학 입시처럼 합격 순번이나 합격 여부 통보 날짜조차 밝히지 않은 것은 전형적인 ‘갑질’이라고 하소연한다. 올해 2월 대학을 졸업한 한 취준생은 “지난해에는 신입사원 입사일인 1월2일 이후에도 추가 합격 통보를 받은 경우가 있다고 해서 내년 1월 초까지는 기대를 걸고 있다”며 “예비 순번이라도 정해주면 불필요한 희망고문은 안 당해도 될 것 같다”고 성토했다.
실제로 상당수 공기업에서는 이미 예비합격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대부분 합격 순번을 부여한다. 노량진에서 수년간 공기업 취업강의를 해온 김모씨는 “예비합격제도를 운영하는 공기업과 공단에서는 합격 순번도 이미 부여하고 있고 현실적으로 추가 합격이 가능한 비율만 집계해 대상자를 선정하고 있다”며 “반면 일부 기업들은 임의로 예비합격 대상자를 선정하다 보니 말만 예비합격일 뿐 실제로는 대부분 떨어진다”고 전했다.
기업에서 예비합격제도를 운영하는 것은 해마다 최종합격자 가운데 이탈자가 발생해 목표했던 정원(TO)을 채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순번과 통보 기간 등을 자세하게 공지하면 여러모로 부담이 된다는 입장이다. 한 중견기업 관계자는 “최종합격자 발표날이 주요 대기업과 겹치는 경우가 많아 합격자의 대거 이탈을 우려해 예비합격제도를 도입했다”며 “예비합격 순번을 알려주면 ‘상위 번호를 받았는데 왜 합격이 안 되느냐’는 항의가 예상돼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업의 한 관계자는 “통보 날짜도 필요하지만 사실 결원이 언제 발생할지 예측하기 힘들다”며 “결국 기업의 행정상 편의를 위해 취준생들이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