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정책

가상화폐 규제놓고 딜레마에 빠진 정부

법무부 "거래금지" 검토하지만

가격급락 우려 투자자 소송 등

또다른 논란 불거질 가능성 커





가상화폐 규제를 놓고 정부가 딜레마에 빠졌다. 대표적인 가상화폐인 비트코인 가격이 8일 한때 2,400만원에 달할 정도로 투기과열 양상을 보이자 정부가 투자금액이나 자격 제한을 검토하거나 거래 자체를 금지하는 방안까지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부 규제에 따른 비트코인 가격 급락 가능성과 이에 따른 기존 투자자들의 반발과 손해배상 소송, 그리고 국내에서만 거래를 금지한다고 해서 투기과열 양상을 막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 등 새로운 논란이 불거지고 있어서다.


8일 정부 등에 따르면 범정부합동 가상화폐 태스크포스(TF)는 최근 주무부처가 금융위원회에서 법무부로 옮겨가면서 가상화폐 규제에 대한 입장이 강경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법무부는 범정부합동 TF와 별개로 부처 내에 별도의 TF를 구성해 가상화폐 거래를 규제할 법안을 마련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법무부가 비트코인 투자금액과 투자자 자격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극단적으로 국내에서 가상화폐 거래 자체를 금지하는 방안까지 검토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이 같은 강경 조치는 이낙연 총리가 최근 비트코인에 대한 투기과열이 사회적인 병리 현상으로 번질 수 있다며 공개 경고하면서 탄력을 받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내 가상화폐 투자자는 200만명에 육박할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는데다 투기세력까지 가세해 급격한 가격변동이 발생하다 보니 선량한 투자자들의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어서 일부에서는 극약처방을 써야 한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정부가 가상화폐 거래 중지와 같은 극단적인 처방까지 고민하고 있는 배경이다. 가상화폐 TF를 주도하는 법무부는 “현재 TF를 구성해 여러 방안을 살펴보고 있다”면서도 “현재까지 정해진 게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융위 등은 법무부에서 국내 거래를 금지하거나 제한하고 싶어하는 분위기는 있는데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방침이라며 이견을 보이고 있다. 특히 가상화폐 투자금액이나 자격을 제한하는 것도 거래소에 대한 인가제를 전제로 하고 있어 말이 안 된다는 주장이다. 법무부가 실현 가능성과는 무관하게 거래금지 등의 초강력 조치를 검토하고 있는 데 대해 부처의 이견이 커 거래 투기화를 경고하는 구두개입 정도에 그쳐 시장의 내성만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법무부는 투자금액이나 투자자격 제한 등의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투자자격 제한 등에 나서려면 거래소 인허가 권한을 가지고 입김을 직접 넣을 수 있는 구조여야 하는데 이는 사실상 거래소 인가제를 도입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금융 당국은 일본처럼 거래소 인가제를 도입하는 것은 정부가 가상화폐 거래를 제도화하는 것이고 오히려 거래소 난립에 따른 투기과열을 부추길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금융 당국의 한 관계자는 “가상화폐 거래를 금지하거나 제한하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면서 “가상화폐의 투자 금액이나 자격을 제한하는 것도 거래소 인가제를 전제로 하고 있어 앞뒤가 맞지 않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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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금융위는 가상화폐 거래를 일종의 유사수신 행위로 규정하는 법 개정을 통해 원천적으로 규제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법무부는 가상화폐 거래를 유사수신 행위로 규정할 수 없다며 반대하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가상화폐 거래소가 투자자들에게 원금 지급을 약정하고 자금을 조달하는 곳이 아니라 가상화폐라는 상품을 판매·중개하는 곳”이라며 “유사수신 행위로 규정할 성격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일부에서는 법무부와 금융위 간 이견으로 각각 별도의 입법을 추진할 경우 가상화폐나 가상화폐 거래에 대한 법적 성격이 일관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온다.

과세 여부를 놓고도 부처 내 이견이 큰 상황이다. 국세청은 가상화폐도 부동산과 같은 일종의 자산이라며 매매차익에 대한 양도세나 거래세 등을 과세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금융위는 최근 비트코인을 자산으로 볼 수 없다는 정반대 입장을 내놓고 있다. 정부가 가치를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가상화폐를 화폐의 일종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 말고는 관련 부처 내 합의된 입장이 전무한 셈이다. 이런데도 일부 부처가 규제 선점 효과를 노리고 실현 가능성과 무관하게 강경대책을 마련하는 데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기본적인 입장조차 조율돼 있지 않다 보니 TF를 통해 논의하는 과정에서 이견이 더 커질 수 있다는 딜레마도 안고 있다는 점이다. 범정부 TF에는 법무부·금융위·국세청뿐만 아니라 기재부·한국은행 등 11곳의 관련 부처가 참여하고 있다. 가상화폐 감독 문제나 과세 문제 등 각종 사안을 두고 부처들 간 이해관계가 충돌할 우려가 크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가상화폐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유럽연합(EU)의 불간섭원칙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정부가 단기간에 가상화폐 시장을 규제하려다 보니 정책이 오락가락하고 있다”면서 “유럽연합처럼 불간섭주의 원칙을 지키되 업계가 자율 규제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 가상화폐 투기과열 양상을 진정시키기 위한 조치는 필요해 보이지만 이것이 과거와 같은 관료들의 규제 만능 사고에만 의존하면 ‘양화가 악화를 초래’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가상화폐 TF는 내주 회의를 열고 최근 비정상적 가상통화 시장 움직임과 함께 정부 차원의 규제안을 논의한다. 여러 규제 방안들이 도입될 경우 어디에 법적 근거를 둬야 하며 법규 신설이 필요한지 등도 함께 검토될 것으로 전해졌다.

김기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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