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하얀색 비아그라



영국의 의약품 체인인 부츠가 2007년 밸런타인데이(2월14일)에 맞춰 비아그라를 처방전 없이 판매하자 수백 명의 남성이 점포 앞에 길게 늘어섰다. 의사에게 발기부전을 알리고 싶지 않은 남성들이 몰려든 것이다. 부츠에서는 약사에게 병력과 혈압·콜레스테롤·당도 등에 대해 간단한 검사를 받으면 그만. 특이사항이 없으면 그 자리에서 비아그라 네 알을 살 수 있으니 여간 편리한 것이 아니었다.


부츠는 1,500여개의 체인망을 앞세워 영국에서 비아그라 판매를 독점하다시피 했다. 이런 지위에 균열이 생긴 것은 2010년 9월. 영국 최대의 유통 업체인 테스코가 300여개 점포에 입점해 있는 약국에서 비아그라를 싼값에 팔기 시작했다. 여덟 알에 52파운드. 부츠가 네 알에 55파운드를 받았으니 절반으로 가격을 확 낮춘 셈이다. 이후 영국에서는 한동안 두 유통공룡 간에 치열한 비아그라 판매 전쟁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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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비아그라 가격이 곤두박질쳤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되레 그 반대다. 1998년 출시된 원조 발기부전 치료제를 찾는 ‘충성파’ 남성들이 전 세계에 넘쳐나기 때문이다. 초창기 한 알에 10달러 정도였던 소매가는 60달러대까지 치솟았다. 현재 미국에서는 한 알에 62~65달러(약 7만원)선인데도 수요는 여전하다. 지난해 미국에서 1,200만명 이상이 비아그라와 라이벌 격인 시알리스를 합쳐 30억달러(약 3조3,000억원)어치나 구매했을 정도다.

비아그라 제조사인 화이자가 11일(현지시간) 소매가격을 절반으로 내린 복제약을 시판한다는 소식이다. 보유하고 있는 실데나필 구연산염(비아그라는 제품명)의 독점판매권이 종료되기 때문이다. 제품 색깔도 파란색에서 하얀색으로 바꿀 모양이다. 저렴한 자체 복제약을 판매해 고객 이탈을 최소화해보려는 고육지책인 것 같다. 세계 1위 복제약 전문 업체인 테바가 같은 날 비아그라 제네릭을 출시하고 내년 여름께는 더 많은 유사품이 쏟아져 나올 예정이어서 가격이 현재보다 90% 가까이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자신감을 되찾으려는 남성들에게는 희소식임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한 가지 명심할 것이 있다. 어떤 약이든 남용하면 탈이 나는 법이다. /임석훈 논설위원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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