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경제·마켓

[영국 車산업의 처참한 몰락]자국 브랜드 뿔뿔이 해외로 팔려...세계1위 수출국서 하청기지 전락

한 사업장에 10개노조 세력다툼

분규로 신모델 출시 지연 밥먹듯

뒤늦게 노사협력 나섰지만 때놓쳐

현장근로자 권익도 갈수록 악화



1950년대 세계 최대 자동차 수출국의 명성을 자랑하던 영국은 극심한 노조 리스크로 인해 ‘주문자상표부착(OEM) 자동차 생산국’으로 위상이 급추락한 상태다. 1980~1990년대 잇따른 자국 브랜드 매각으로 일부 럭셔리 카를 제외한 영국 완성차 브랜드가 모두 외국 자본에 팔려나간 탓이다.

영국 자동차 산업이 불과 반세기 만에 처참히 몰락하는 데 가장 주효한 것은 노조와의 갈등에 따른 비용 상승 및 생산성 저하라는 것이 공통적 평가다. 1980년대까지 이어진 잦은 노사 분규가 영국 완성차 업체들의 경쟁력 약화에 크게 일조했다는 것이다.

당시 영국에서는 같은 업체 내에서도 운수·기계·전기·판금 등 다양한 직종별 노조가 존재해 교섭 구조가 극도로 복잡해졌고 노노 갈등이 일기도 했다. 가뜩이나 생산비용 증가로 발목이 잡힌 영국 자동차 회사에서는 한 자동차 사업장에서 10여개의 노조가 세력 다툼을 벌이는가 하면 노사 분규로 신모델 출시가 지연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강성 노조 리스크와 낮은 생산성이 문제가 되면서 1980년대 말부터 주요 영국 브랜드들은 자국 내에서 매수 주체를 찾지 못하고 하나둘 해외에 매각됐다. 1987년 애스턴 마틴이 미국 포드사에 매각됐고 1994년에는 재규어·랜드로버와 미니가 독일 BMW로 넘어갔다. 이어 1998년에는 영국 왕실 자동차의 위상을 이어온 롤스로이스와 벤틀리마저 독일 BMW, 폭스바겐으로 각각 주인이 바뀌었다. 이후 애스턴 마틴은 쿠웨이트 금융 컨소시엄에, 재규어·랜드로버는 포드를 거쳐 인도 타타자동차의 소유가 되는 등 영국 차 브랜드들은 전 세계로 팔려나가는 부침을 거듭했다.

관련기사



독보적인 기술력으로 이름 높았던 영국 자동차는 현재도 엔진 등의 뛰어난 성능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명망이 높다. 독일·미국·일본 등지의 주요 완성차 업체들이 앞다퉈 영국에 공장을 짓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 영국 자동차 생산량은 2007년 이래 최고인 약 181만대에 달했다. 하지만 이미 모든 브랜드를 잃은 영국의 현주소는 거대한 OEM 생산기지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 과정에서 근로자들의 권리도 악화했다. BMW는 재규어·랜드로버 매입 이후 독일에서 적용했던 근로시간계정제(노동시간계좌제) 등 근로시간 유연성 확보에 나섰지만 노조는 단체행동을 하지 못했다. 다시 포드로 주인이 바뀐 무렵에는 전체 현장근로자의 약 40%가 비정규직으로 바뀔 정도로 고용 안정성도 낮아졌다.

이 같은 영국 차들의 운명은 협력적 노사 관계로 세계 수위의 제조업 경쟁력을 확보한 독일과 특히 대조적이다. 독일은 1990년대 통일 이후의 경기 부진에서 벗어나기 위해 2000년대 초반 정부와 민간 부문이 협력해 노동 유연성 확대를 골자로 하는 경제개혁을 단행했다. 기업은 근로자의 고용을 보장하고 노조는 임금 인상과 근로시간을 양보했으며 정부도 비효율적인 사회보장 시스템을 개선했다. 협력적 노사관계로 인한 생산성 증대는 독일이 자동차·기계를 필두로 한 제조업 강국으로 부상하는 주춧돌이 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전 브랜드를 잃고 나서야 협력적 노사관계 모델을 구축한 영국의 전철을 우리가 재연하지 않도록 정부와 민간 부문의 협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희원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