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에너지정책의 첫 법정 계획인 이번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원전과 석탄발전을 줄이면서도 전기요금을 인상하지 않겠다는 것이 골자다. 탈(脫)원전·석탄 정책에도 2022년까지 전기요금 인상률은 1.3%, 2030년까지 시계를 늘려 잡아도 10.9% 상승하는 데 그칠 것이라는 게 산업통상자원부가 내놓은 전망치다. 하지만 이 같은 추정치는 연료비와 물가상승률을 제거한 실질 전기요금만을 기준으로 범위를 좁혀 계산돼 앞으로 전기요금 인상에 대한 논란은 더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 낙관론의 근거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2022년까지는 이전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확정한 원전과 석탄 발전설비가 잇따라 완공된다. 실제로 원전의 경우 발전설비 규모가 올해 22.5GW(24기)에서 2022년에는 27.5GW(27기)로 늘어난다. 석탄도 마찬가지다. 2017년 36.9GW(61기)인 설비 규모가 2022년 42GW(61기)로 확대된다. 쉽게 말해 값싼 발전원이 늘어나는 만큼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없다는 것이다.
2022년 이후에도 석탄과 LNG의 상대적 가격 차를 좁히는 방법을 통해 전기요금 인상을 억제할 수 있다고 산업부는 설명했다. 당장 내년부터 유연탄의 개별소비세가 1㎏당 6원 인상된다. 내년 5월까지 기획재정부·산업부·환경부가 머리를 맞대고 유연탄과 LNG 간 세율 추가 조정 방안도 확정할 계획이다. 여기에 전력원가에 반영되지 않은 배출권 거래 비용과 약품 처리비, 석탄 폐기물 비용 등을 감안하면 석탄이 빠지는 자리를 전기요금을 크게 올리지 않고도 LNG로 채울 수 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발전량이 가장 큰 폭으로 늘어나는 신재생 에너지의 경우 발전원가가 큰 폭으로 감소할 것이라는 게 정부가 내건 마지막 근거다. 산업부는 블룸버그 등 해외 기관의 태양광 모듈가격 전망치와 우리나라의 과거 실적을 반영한 비모듈가격 전망치를 종합해 2030년 신재생의 발전 원가가 올해보다 35.5% 싸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같은 정부의 전망을 두고 ‘장밋빛’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값싼 원전과 석탄발전이 우후죽순 들어섰던 지난 13년간 실질 전기요금 인상률은 13.9%. 하지만 물가 상승과 연료비 변동까지 고려한 명목 상승률은 68%에 달한다. 또 2030년에도 제1 발전원 역할을 하는 석탄발전은 정부 정책에 따라 되레 가격이 비싸지고 가장 값싼 원전의 비중은 줄어든다. 원전과 석탄이 생산하는 전력량만 전체의 60%다. LNG는 연료비 변동폭이 가장 큰 발전원이다. 고작 20%의 발전량을 채우는 신재생이 획기적으로 싸지지 않는 이상 전기요금도 오를 수밖에 없다.
전력 수요 관리도 난제다. 이번 제8차 전력수급계획은 2030년까지 전력수요가 제7차 계획 대비 급격히 줄어든다는 전제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2030년 예상되는 전력수요는 113.4GW로 이전 계획 대비 16.4GW(13%), 목표 수요도 100.5GW로 7차 때보다 12.7GW(11%) 각각 줄었다. 전체 발전설비는 122.6GW다. 수요 관리로 전력 사용량을 최대한 억제하겠다는 게 정부의 복안이지만, 전기요금 인상 없이는 수요 관리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수요 관리의 핵심은 요금인데 요금을 건드리지 않고 수요 관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거짓말이거나 엄청난 국가 재정을 쏟아붓는 일을 만드는 것”이라며 “전력 수급 문제, 온실가스 문제, 신재생 확대, 수요 관리 등 많은 우려가 있었지만 이번 8차 계획이 그런 우려를 씻어낼 수 있을 정도로 설득력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대로 가면 원전과 석탄이 본격적으로 퇴출되기 시작하는 2030년 이후에는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승진 한국산업기술대 지식기반기술·에너지대학원 교수는 “2030년까지는 원전과 석탄이 버티고 있어 큰 문제가 안 되지만 그 이후가 문제”라며 “원전과 석탄의 수명이 다돼 급감하기 시작하는 이후부터는 (전기요금도) 문제”라고 말했다. /세종=김상훈·박형윤기자 ksh25t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