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토요워치-괴짜들의 반란] 인남모를 아시나요

여성에 차인 인기 없는 남성 모임

코드 맞는 사람, 창의적 활동 급증



노인기(가명)씨는 지난해 초 소위 ‘썸’을 타던 여성으로부터 혹독하게 차였다. 노씨는 그날을 기억하며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 정말로 쓸쓸하고 씁쓸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노씨는 결심했다. “그래, 인기 없는 남자가 나 혼자뿐이랴.” 페이스북에 여자친구가 없는 친구 40여명을 초대해 페이지를 만들었다. 이름은 ‘인기 없는 남자들 모임(인남모)’이다.

세상에 인기 없는 남자들은 많았다. 16일 기준 ‘인남모’의 페이스북 회원 수는 약 5만명. 팔로어 수도 5만2,000명이 넘는다. 지난해 2만명이던 회원이 1년 만에 두 배 넘게 늘었다.


인남모 회원 수가 급격하게 늘어난 스토리는 이른바 ‘급식체(초중고생 사이에서 사용되는 은어)’로 ‘웃프다(웃기지만 슬프다)’. 지난해 한 일본 남성용 자위 기구 업체가 한국 진출을 위해 제품을 무료로 주는 이벤트를 했을 때다. 노씨는 인남모 명의로 이벤트에 “우리는 인기도 없고 쓸쓸하다”고 지원했고 이 업체는 수십 개의 제품을 모임에 보내줬다. 노씨는 “어디 가서 말도 못할 얘기지만 이벤트 이후 반응은 폭발적이었다”며 “우리만 공유하는 재미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인남모에는 연애 고민과 쓸쓸한 자취생활 등 솔로 남성의 고민을 담은 글이 많다. “인남모에서마저 인기가 없으면 어떻게 하죠”라는 글에는 “평소와 같으니 전혀 걱정 말라”는 센스 있는 답들이 달린다.


운영방식도 특이하다. ‘커플’이 된 것이 발견되면 곧바로 강제 퇴출이다. “너무한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노씨는 “기회는 있다”고 답했다. 노씨는 페이스북에 ‘인남모 복귀 수용소’라는 페이지를 만들었다. 강퇴된 회원들이 복귀 수용소에서 “주제를 모르고 커플이 됐다”는 식의 반성문을 쓰면 다시 받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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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남모는 여자들에게 차인 남자들이 회원의 대부분이지만 ‘여성혐오’로는 흐르지 않는다. 페이지 초기에 일부 있던 ‘여혐’이 운영자의 ‘우리가 인기가 없지 인성이 없냐’는 명언에 사라졌다. 이제는 회원들끼리 티셔츠나 머그컵 등을 만들어 ‘나 인기는 없지만 인성은 있다’는 슬로건을 새겨넣기도 한다. 여성 회원들도 많이 늘었다.

최근 페이스북에는 인남모 외에도 ‘술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회원 수 22만명)’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 11만명)’ 등 남들은 좋아하지만 뭔가 싫다는 사람들이 모이는 페이지가 많아지는 추세다.

오프라인에서도 이 같은 모임이 생기고 있다. 두산건설의 부산 해운대 동백 위브더제니스 현장직원 18명은 지난 2월 모여 ‘술 없는 회식’ 모임을 만들었다. 이들은 술을 마시지 않는 대신 맛집 탐방과 야간 스키, 실내 낚시, 야외 서바이벌 게임 등 다양한 활동을 즐기고 있다. 마음이 맞는 직원끼리 모였기 때문에 단결력이 대단하다. 최근에는 독거노인들의 집을 고쳐주는 등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이외에도 최근 회사별로 철인 3종 경기에 도전하는 모임과 드론 비행을 연습하는 모임, 스킨스쿠버 등 코드가 맞는 사람들끼리 뭉치는 일도 많아지고 있다.

모임을 만든 이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노는 것이 더 좋다”고 말했다. 김석일 두산건설 해운대 위브더제니스 현장소장은 “현장은 특성상 철저한 공사계획과 정밀시공이 필요하다”며 “술 안 먹고 코드 맞는 사람들끼리 단체활동을 하니 업무능력도 더 향상됐다”고 설명했다.

인남모를 운영하는 노씨도 “자칫 자괴감에 빠질 수 있는 사람들이 페이지에서 고민을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씨는 “인기가 없는 이유를 사회나 여성에서 찾기보다는 자기 자신에서부터 찾자고 페이지를 만든 것”이라며 “많은 분들이 페이지에서 재미를 찾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구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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