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생활

[토요워치] 세상 룰을 깨다...괴짜들의 반란

도곡동 'vaskit 423'에

밀집된 정육점·카페·빵집

괴짜들 뭉쳐 새 문화 조성

사회 변화 이끄는 주류로

타인과 협력·공존에도 눈떠



# 서울 강남구 도곡동 뒷골목에는 요즘 뜨는 ‘핫한’ 건물이 있다. 카페·정육점·빵집·레스토랑이 한데 모인 ‘vaskit 423’이다. 이곳에는 저지방 숙성육 전문점(감성고기), 밀크티로 유명한 카페(카페진정성), 우리밀로 만든 빵집(벨로), 국제인증을 받은 유기농 유제품 전문점(범산목장)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여기서 나온 식재료들을 활용해 요리로 풀어내는 식당(첼라)도 있다. 이들 가게 주인들은 전통적 가게와 다른 길을 가겠다고 선언한 괴짜들이다. 이들이 한데 모인 것은 ‘사람을 믿을 수 있는 모던 시장’을 만들자고 의기투합했기 때문이다. ‘vaskit 423’는 폭넓은 인기를 끌며 획일화된 도곡동의 문화를 바꿔나가고 있다.

괴짜들이 한국 사회는 물론 산업의 모습까지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영어로 ‘긱(geek)’이라고 하면 세련돼 보이지만 우리말로 번역했을 때의 ‘별종·괴짜’라는 명칭에는 그들을 독특하고 이상한 사람 취급하는 시선이 녹아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어느새 괴짜가 한국 사회를 바꾸며 주류 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회적으로 오랜 세월 비주류에 머물러온 괴짜들의 힘은 이제 주류 여론을 바꿀 정도로 커졌다. 주류 의료계에서 열악한 노동조건 등을 이유로 외면당해온 중증외상센터가 최근 들어 부각된 과정이 대표적이다. ‘괴짜 의사’로 통했던 이국종 아주대 교수가 판문점을 넘어 탈북한 북한 병사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논란이 빚어지자 중증외상센터의 열악한 상황을 토로했다. 그의 진심에 중증외상센터 지원을 호소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지난 12일 현재 무려 26만8,360명이 참여했다. 여론의 압박에 정부의 중증외상센터 지원 예산은 당초 안보다 200억원 이상 늘어난 612억원으로 편성됐다.

산업적으로도 이제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 리처드 브랜슨 등 성공한 괴짜 기업인들을 외국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패션·정보기술(IT) 등 다양한 부문에서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제2의 네이버나 카카오를 꿈꾸는 젊은 괴짜들이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그리고 조금씩 성과를 내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타인과의 협력을 ‘장착’한 괴짜들이 새로운 기업가의 전형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협력하는 괴짜’라는 책을 낸 이민화 KAIST 교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살아남을 인재상이 기업가정신을 가진 협력하는 괴짜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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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에 대해 달라진 시선은 문화적 ‘취향’의 영역에서도 나타난다. 일본어 ‘오타쿠’에서 유래한 말로 마니아적 취미에 몰두한다는 뜻의 ‘덕질’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면 단적으로 알 수 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오타쿠’라는 말에는 ‘무시의 함의’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덕질’은 지금 일상 용어로 자리 잡았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우리 사회가 과거에는 주류의 일반적 가치에서 벗어난 사람을 굉장히 이상하게 생각했다”며 “하지만 현재는 서로 다른 취향을 존중하게 되면서 사회가 용인하는 취미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박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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