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그동안 정권이 바뀌면 공기업 사장이 줄줄이 그만두는 물갈이 인사가 진행됐습니다. 새 정권이 국정 철학에 맞는 코드 인사란 명분을 내세워 선거 공신들을 공기업 수장에 줄줄이 앉힌 건데요. 문재인 정부는 이같은 관행을 적폐로 보고 전 정권 때 임명된 공공기관장에 대한 인위적인 물갈이는 없다며 선을 그어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이런 기조와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보도에 정창신기자입니다.
[기자]
지난 8일 조환익 한국전력 사장의 갑작스런 퇴임으로 에너지 공기업의 사장 자리가 공석 상태입니다.
조 전 사장은 임기가 내년 3월 27일까지로 3개월 가량 남았습니다. 그는 퇴임사에서 “후임에게 길을 열어줘야 한다”면서 “제가 원해서 좀 더 일찍 퇴임한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한전의 한 직원은 “연말 내부 인사가 진행되는데 사장 퇴임으로 불투명해 졌다”면서 “인사를 마무리하고 남은 임기를 채웠다면 더 책임 있는 모습이 됐을 것”이라고 아쉬워했습니다.
3개월 먼저 나간다고 후배에게 길을 터줄 수 있는 것이냐도 의문입니다. 또 스스로 퇴임한다고 굳이 언급한 것은 외압이 있었다는 것을 애써 부정한 것이란 분석도 나옵니다.
실제로 지난 9월 11일 백운규 산업부 장관은 한 식당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공공기관장은 국정철학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사실상 공공기관장 인선 방향을 제시한 것 아니냐는 겁니다.
문재인 정부는 전 정권 때 임명된 공공기관장에 대한 인위적인 물갈이는 없다는 기조를 보여왔지만 지금의 모습은 이와 반대되는 분위기입니다.
결국 백 장관의 말 한마디에 한전 발전 자회사의 장재원 남동발전 사장, 윤종근 남부발전 사장, 정하황 서부발전 사장, 정창길 중부발전 사장 등 4명이 일괄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임기가 2019년 1월 또는 11월까지로 1년 이상 남은 상황이었습니다.
특히 장재원, 정창길 전 사장은 한전에서 사회생활을 출발한 인물이고, 나머지 두 명도 10년 가량 한전에서 일한 인물들입니다.
이들이 외부 낙하산 인사도 아니고 사실상 한전 내부 출신 인물인데 국정 철학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지적입니다.
상황이 이렇자 업계에선 촛불 민심을 등에 업고 탄생한 문재인 정부도 이전 정부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들보다 앞서 김학송 전 한국도로공사 사장은 “새 정부에 부담을 주기 싫다”는 이유로 지난 7월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임기가 5개월 가량 남았지만 스스로 하차를 선택한 겁니다.
홍순만 전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사장도 지난 7월 임기를 1년 넘게 남기고 사퇴했습니다. 홍 사장은 코레일과 철도시설공단의 통합에 대해 “정부 결정에 따를 것”이라며 현 정부의 정책 기조에 발맞출 계획을 밝혔지만 특별한 이유 없이 사표를 낸 바 있습니다.
[영상편집 소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