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회·정당·정책

[여명] 기업하기 힘든, 금융하기는 더 힘든 나라

김홍길 금융부장

은행·보험·카드사 가릴 것 없이

서민금융정책용 수단으로 변질

현장 답답한데 당국은 딴얘기만

김홍길 부장




“이제는 기대를 접어야지요.”

최근 사석에서 만난 한 보험사 최고경영자(CEO)는 신세 한탄조로 말을 꺼냈다. 국내 보험사는 유럽의 자본규제(IFRS17)를 국내에 도입하면서 추가 자본확충 등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금융당국은 명확한 타임테이블을 내놓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식 규제도입을 위해 몇 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도입할지, 지급여력(RBC) 비율은 또 얼마로 할지 궁금한 게 너무 많은데 주부 부처인 금융위가 꼼짝을 않고 있다는 하소연이다. 그는 “최저임금 인상도 발등의 불이기는 마찬가지인데 자본규제 이슈는 이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메가톤급 이슈”라고 말했다.


“설마 당국이 그러겠느냐”고 반문하자 “실무자들끼리는 어느 정도 얘기가 되고 있지만 ‘윗선’의 컨펌(확인)이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며 “보험사가 당국의 실무자 말만 듣고 결정을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토로했다. 보험업계 최대 이슈지만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아는지 모르는지 일절 언급을 않고 있어 답답하다는 것이다. 현 정부 초기 금융 홀대론이 나올 때만 해도 혹시나 하는 심정이었지만 이제는 아예 기대를 접어야 할 상황이라는 게 이 CEO의 하소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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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에서는 이처럼 비슷한 고민을 토로하는 이른바 ‘미투(me too·나도 마찬가지다)’가 이어지고 있다. 은행은 이미 대출총량 제한에 가산금리 규제, 법정 최고금리 인하 등으로 돈을 벌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베트남이나 캄보디아 등 동남아 진출을 확대하고 있지만 당장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은행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장기연체 채권에 대한 빚 탕감도 은행으로서는 부담이다. 잘 갚아 오던 차주들도 정부의 추가 대책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상환을 미룬 채 ‘더 기다리자’는 심리가 확산될 수 있어서다. 금융을 육성해야 할 산업으로 보지 않고 서민금융 정책에 언제든지 이용 가능한 수단으로 접근하다 보니 시장원리는 간데없고 곳곳에서 “금융 못해 먹겠다”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당국이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금융사들은 기대감보다 ‘또 피를 보게 생겼다’는 한탄이 먼저 나오는 이유다.

카드업계라고 다르지 않다. 정부가 영세 카드가맹점 수수료를 인하하자 실적이 곤두박질친 카드사들은 1~2년 내 구조조정이 올 것이라는 불안감이 팽배하다.

금융현장은 이렇게 다급하고 뭐에 체한 듯 답답한데도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은 연일 금융지주의 지배구조 얘기만 하고 있다. 최 위원장이 첫 애드벌룬을 띄우더니 최 원장은 현장검사를 통해 확인하겠다고 한 발 더 나갔다. 누가 봐도 현장과 괴리된 모습이고 본업을 잊은 게 아니냐는 오해를 사기 충분하다.

현 정부 첫 금융위원장으로 거론됐던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투자은행(IB)에 대한 싸늘한 여론을 뚫고 한국형 IB와 헤지펀드 도입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그가 직접 국회와 언론을 만나 우호적인 분위기를 만들지 않았다면 지금의 한국형 IB도 없었을 것이다. 최 위원장 직전의 수장이던 임종룡 전 위원장은 “내가 책임지겠다”며 난관에 처했던 대우조선해양의 구조조정을 이끌었다. 임 전 위원장은 언론사 금융·경제부장 조찬간담회를 열어 설득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최 위원장은 성동조선이나 STX조선 등 중소 조선사의 구조조정을 앞두고 전운이 감돌지만 임 전 위원장과 같은 소통의 자리를 마련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최 원장은 최근 임 전 위원장이 했던 것처럼 언론사 부장들과 조찬간담회를 가졌지만 대부분을 “금융지주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로만 채웠다. 아침 찬바람을 맞으며 회사로 돌아오는 길에 “기업하기도 힘들다는데, 금융하기는 더 힘들겠다”는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what@sedaily.com

김홍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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