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칼럼]중국 왕조의 흥망은 한국의 손에 달렸다

문성근 법무법인 길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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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 진(秦)-한(漢)-수(隋)-당(唐)-송(宋)-원(元)-명(明)-청(淸)으로 연결되는 통일왕조 흥망의 열쇠가 바로 한국에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한국과 가까울 때 흥했지만 멀어지면서 쇠락했다.

진은 통일을 이루자마자 큰 배 60척과 5,000명이 넘는 선원으로 구성된 선단을 동방으로 보냈고, 이 선단은 제주도의 서귀포에 닿는다. 혹자는 이 황해의 목적이 불로초를 구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한마디로 웃기는 소리다. 진왕 정은 서쪽 변방의 오랑캐 나라를 부강 시켜 6국을 멸하고, 제국을 건설했다. 그런 그가 비현실적인 꿈에 사로잡혀 국력을 기울인 대선단을 동방으로 보냈을까? 절대 그럴 리가 없다.


그가 선단을 파견한 진짜 목적은 동방과의 교역을 위해서였다. 서쪽의 내륙 변방에 위치한 진은 오래전부터 동쪽 해안에서 융성한 해양문화를 누리는 오, 초, 제 등의 나라를 부러워했다. 이 때문에 그는 대업을 이루자마자 서둘러 대규모의 무역선단을 동방으로 보낸 것이다. 그런데 그 꿈은 물거품이 됐다. 선단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고, 이 바람에 진의 국고는 거덜이 났다. 그런데다 연이어 터진 농민반란으로 제국은 허무하게 무너졌다.

그 후 다시 제국을 세운 한(漢)은 한반도 북서쪽에 한사군(漢四郡)을 설치해 한반도와 왕성하게 교류했을 때 가장 번창했다. 그런데 흉노를 비롯한 북방 민족과의 갈등으로 한사군에 대한 지배력을 잃고 한반도와의 교류가 끊기면서 쇠약을 거듭하다 결국 붕괴됐다. 수 왕조는 오랜 분열을 극복하고 가까스로 통일을 이루지만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지는 바람에 불과 15년 만에 망했다. 수를 이어받은 당은 전조의 실패를 거울삼아 신라와 손잡고 고구려와 백제를 평정해 국제적 부강을 이룬다. 그러나 동북지역에 권력기반을 둔 군벌 안록산(이란계 소그드인 아버지와 돌궐족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의 반란 이후 한반도와의 교류가 끊기면서 나라가 기울었다.


송은 고려의 동맹국이었을 때 세계적인 문명을 꽃피우지만, 고려가 원의 손을 잡자 몇 년을 못 견디고 몰락했다. 원 역시 고려와 손을 잡은 명에 의해 북방의 몽골지방으로 쫓겨난 뒤 힘을 잃었다. 명은 토목의 변(1449년) 때 50만 대군이 격파되고 황제는 포로가 된 채 북경이 포위돼 멸망 직전에 이르지만, 조선의 지원으로 몽골군을 북방으로 물린 후 왕조의 명맥을 유지했다. 그러나 조선이 청과 손을 잡게 되자 불과 10년 만에 사라진다. 그 뒤 청은 왕조의 운명을 오롯이 조선과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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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서도 달라진 게 없었다. 모택동이 장개석과 패권을 다툴 때 백두산 너머로부터 무기와 피난처를 제공 받았고, 이 때문에 중국은 지금도 한반도의 중요성을 결코 잊지 않는다. 다른 이야기도 있다. 당나라의 주왕은 새로운 세상을 위해 정변을 꾀하지만 실패하고 신라에 도움을 청한다. 그러나 신라 마일성 장군의 토벌로 주왕굴 앞에서 피를 뿌리고 죽는데, 이로 인해 청송 주왕산에는 봄마다 검붉은 반점의 핏빛 철쭉이 흐드러지게 핀다.

이처럼 역사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듯 예나 지금이나 한반도는 중국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알고 보면 중국이란 나라는 땅덩이는 크지만 정권은 의외로 취약하다. 권력의 소용돌이가 하도 잦고 커서 분열 후 통일을 이루는 세력은 기존권력과는 거리가 먼 평민이나 이민족이다. 이민족이라고 해봤자 인구가 수백만에 불과한데, 그 이민족의 수가 지금도 무려 50개가 넘는다. 이 때문에 중국의 권력은 강한 힘보다는 시대의 흐름과 민심에 따라 결정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역사를 이해한다면, 우리는 중국당국이 대만과 홍콩, 티벳, 신장위구르, 내몽고의 움직임은 물론 파륜궁(法輪功) 같은 단체에마저도 왜 그리 예민하게 구는지 까닭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중국이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보다 한반도가 중국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며, 한국의 중국걱정보다 중국의 한국걱정이 훨씬 더 크다는 사정도 이해할 수 있다.

중국은 우리의 영원한 이웃이다. 그런데 지금껏 우리는 이웃의 겉모습만 보고 큰 덩치에 주눅이 들어 스스로 몸을 움츠린 면이 있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럴 이유가 하나도 없다. 오히려 날렵하고 부드러운 체구에 자신을 갖고 더욱 더 당당해져야 한다. 그래야 이웃의 속사정을 이해하고, 걱정거리도 나눌 줄 아는 여유와 아량을 베풀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든 나라든 앞으로 겉모습보다는 속을 보자./문성근 법무법인 길 대표 변호사

조원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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