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TF "공정위, 가습기살균제 사건처리 잘못" 김상조 "사죄드린다"

민간 중심 TF "2016년 심사절차종료 실체적·절차적 잘못"

환경부 인체위해성 연구결과·피해자 추가인정 잘 모른채

소회의에서 전화로 합의…위법성 판단도 지나치게 엄격

김상조 "피해자에 사죄…공정위 차원에서 향후 조치"

'윗선 외압' '재심의 내부의견 묵살' 등 의혹도 여전히

지난해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심의절차종료(사실상 무혐의)로 의결해 ‘면죄부’ 논란을 빚은 공정위의 사건 처리 경위를 두고 민간전문가 중심 태스크포스(TF)가 19일 “실체적·절차적 측면에서 잘못이 있었다”고 결론 내렸다. 당시 공정위는 전원회의가 아닌 소회의에서 전화통화로 논의하면서 환경부의 판단과 연구 내용 등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심의절차를 종료한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윗선 외압’, 재심의 내부 의견 묵살 등 일부 의혹은 여전히 남아 반쪽짜리 결론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이날 “공정거래위원회를 대표하는 위원장으로서 공식적으로 진심 어린 유감을 표명하며 특히 피해자 분들께 사죄 말씀을 드린다”며 “오늘 TF 발표를 시발점으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위해가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처리 TF(태스크포스) 팀장인 권오승 서울대 명예교수(왼쪽 두번째)가 19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공정거래원에서 2016년 공정위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처리가 일부 잘못이었다는 평가결과를 밝히고 있다. 오른쪽부터 이호영 한양대 교수, 강수진 고려대 교수, 권오승 교수, 박태현 강원대 교수./연합뉴스가습기 살균제 사건처리 TF(태스크포스) 팀장인 권오승 서울대 명예교수(왼쪽 두번째)가 19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공정거래원에서 2016년 공정위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처리가 일부 잘못이었다는 평가결과를 밝히고 있다. 오른쪽부터 이호영 한양대 교수, 강수진 고려대 교수, 권오승 교수, 박태현 강원대 교수./연합뉴스


권오승 서울대 명예교수를 팀장으로 꾸려진 ‘가습기살균제 사건처리 평가 TF’는 이날 서울 공정거래조정원에서 최종 보고서를 내고 이같은 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이어 공정위에 “이러한 점에 유감을 표명하고 조속한 시일 내에 추가적인 조사와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앞서 가습기살균제 제조업체 SK케미칼과 판매업체 애경은 2002~2011년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이 주성분인 ‘홈클리닉 가습기 메이트’를 판매하면서 ‘인체에 무해한 제품’이라고 광고했다. CMIT와 MIT는 독성물질에 해당하지만 두 회사는 제품 라벨에 이런 사실을 누락한 혐의(표시광고법 위반)를 받았다. 하지만 공정위 소위원회는 지난해 8월 이 혐의에 대한 판단을 중단하는 심의절차 종료 결정을 내렸다. 이 물질의 인체위해성 여부에 대한 환경부의 연구 결과가 최종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TF는 이 판단 과정에 대해 공정위가 위법 여부를 지나치게 엄격하게 해석했다고 지적했다. TF는 “이 제품은 인체위해 가능성이 있고 표시광고 당시 해당 사업자가 제품의 인체위해 가능성에 대해 알 수 있었다”며 “소비자에게 이를 알리지 않은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도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공정위가 제품 위해성이 명확하게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위법 여부를 판단하지 않은 데 대해 TF는 “공정위가 표시광고법의 입법취지와 사회적 기능에 비춰 지나치게 엄격하게 해석한 것”이라고 잘못을 지적했다.

절차적인 문제도 있었다. 최종 합의 당시 공정위 소회의 위원들은 대면회의가 아닌 전화통화로 심의절차종료 결정을 내렸다. 그 결과 최종 합의 전날 환경부가 이 사건 제품을 사용해 폐손상을 입은 2명을 피해자로 추가 인정한 사실을 위원들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심의절차를 종료했다. 심의절차 종료의 근거였던 환경부 연구 내용에 대해서도 위원들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환경부의 추가 조사는 CMIT와 MIT의 인체유해성은 이미 인정한 뒤 피해발생의 메커니즘 등을 규명하기 위한 연구였지만 공정위는 환경부가 인체유해성 여부를 명확히 밝히기 위한 연구라고 오인했다는 것이다.

TF는 사건의 중대성을 감안했을 때 이 사건을 의장이 공정위원장인 전원회의에서 다루지 않고 소회의에서 처리한 것도 부적절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소회의에서 처리한 것만으로 절차적 위반으로 볼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풀리지 않은 ‘윗선 외압’·재심의 의견 ‘묵살’ 의혹

이처럼 TF가 공정위의 사건처리 과정에 실체적·절차적으로 모두 잘못이 있었다고 밝혔음에도 일부 의혹은 가시지 않고 있다. 공정위 소위원회의 심의절차종료 후인 지난해 10월 공정위 내부에서 이 사건을 재심의할 수 있다는 의견이 제시됐음에도 묵살됐다는 의혹이 대표적이다. 당시 공정위 심판관리실은 공소시효 기산일 이후인 2011년 10월 7일 이후 출생한 피해자 아동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이에 따라 공소시효를 연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만큼 사건을 재심의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공정위 전원회의 위원들은 같은 해 12월 비공식적 논의 후 재심의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TF는 따로 조사를 하지 않았다. TF팀장인 권 교수는 “2012~2016년 이뤄진 심의 결과의 적정성 평가에만 초점을 맞췄고 따로 조사할 필요는 느끼지 못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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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사건처리 TF(태스크포스) 팀장인 권오승 서울대 명예교수가 19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공정거래원에서 2012년부터 2016년까지 공정위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처리 절차와 내용의 적정성 평가 결과를 밝히고 있다./연합뉴스가습기 살균제 사건처리 TF(태스크포스) 팀장인 권오승 서울대 명예교수가 19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공정거래원에서 2012년부터 2016년까지 공정위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처리 절차와 내용의 적정성 평가 결과를 밝히고 있다./연합뉴스


전원회의 상정이 ‘윗선의 정치적 외압’에 따라 무산됐다는 의혹도 풀리지 않았다. 심의절차종료 당시 소회의 위원들은 사건의 중대성과 사회적 관심을 감안할 때 전원회의 처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당시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은 표시광고법의 경우 소회의 심의가 원칙이라는 점, 전원회의로 상정하면 공소시효를 넘길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소회의에서 결론을 내는 것이 좋겠다고 밝혔고 이에 따라 전원회의 상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TF는 “외압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증거는 발견할 수 없었다”면서도 별도 조사를 하지는 않았다. 피해자 측 추천으로 TF에 합류한 박태현 강원대 교수는 “공정위 내에 법 전문가들로 구성된 TF의 제한적인 목적과 인적 구성으로 도출할 수 있는 불가피한 결론”이라며 “(정치적 외압 관련한 문제는) 강제조사권도 없는 TF가 보기는 어려운 부분이었다”고 밝혔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당시 결론을 낸 담당자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에서 공정위가 내부에 꾸린 TF로서는 한두발 물러서서 권고하는 수준에서 더 나아가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외압 의혹을 밝히려면 ‘사회적 참사 특별법’에 따른 특별조사밖에 답이 없다”고 말했다.

◇사건처리 잘못, 책임은 어디로

TF가 사건 처리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판단하면서도 공정위에 대한 권고는 ‘유감 표명’과 ‘신속한 재조사 및 적절한 조치’에 그친 점도 아쉽다는 평가가 나온다. 권 교수와 박 교수는 ‘최종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TF가 판단할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공정위 전체 결정의 법리적 잘잘못을 가리고 그를 공정위에 전달하면 공정거래위원장이 적절히 판단해서 조치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책임자 징계를 포함한 추가 조치는 공정위의 몫으로 넘어갔다는 얘기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19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공정거래원에서 2016년 심의절차 종료로 의결한 가습기 살균제 표시광고사건의 처리과정에서 잘못이 있었다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처리 TF측 발표에 대해 피해자들에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19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공정거래원에서 2016년 심의절차 종료로 의결한 가습기 살균제 표시광고사건의 처리과정에서 잘못이 있었다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처리 TF측 발표에 대해 피해자들에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김 위원장은 “TF 보고서 내용과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며 “공정위 전체 차원에서 향후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직원 징계와 외부 기관에 의한 조사 요청 등의 조치까지도 “현재 시점에서 단정하긴 어렵다”면서도 “모든 가능성은 열려있다”고 말했다. 다만 당시 전원회의 상정이 무산된 데 대해서는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고 싶을 만큼 너무나 아쉬운 판단”이라면서도 “책임을 져야 할 부분도 없이 않겠으나 판단의 범위에 속하는 문제이기도 하다”라고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한편 공정위는 현재 애경·SK케미칼의 표시광고법 위반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마무리하고 두 곳을 검찰에 고발하는 안을 전원회의에 상정했다. 공정위는 지난 9월 환경부가 두 성분이 포함된 가습기 살균제의 인체 위해성을 인정하는 공식 의견과 자료를 통보하면서 재조사에 착수했다. 재조사 과정에서 최소 2013년 말까지 이 제품이 팔렸다는 매출기록을 확보해 공소시효도 2018년 말까지 연장할 수 있다는 논리를 끌어낸 것으로 알려졌다. 과징금 규모와 검찰 고발 여부 등 최종 제재안은 다음달 전원회의 후 결정될 예정이다.

김 위원장은 “이 안건에 대해 가장 신중하고도 합리적으로 결론 내리겠다”며 “공정위 전원회의 판단에 따라 추가적으로 취해야 할 조치들도 달라질 수 있으므로 당분간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빈난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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