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장군이 맹위를 떨치는 서울을 뒤로하고 고속도로로 향했다. 아직 해도 뜨기 전, 도로는 한산했다. 동쪽에서 여명이 밝아올 시간이 지났지만 잔뜩 찌푸린 하늘 탓인지 사위는 어둠을 뒤집어쓴 그대로였다. 꼬박 반나절을 달려 도착한 여수의 바람은 서울과 달리 푸근했다. 해풍이 머금은 습기 때문인지 아니면 남쪽의 온기 탓인지 알 수 없으나 온화한 날씨에 마음까지 풀어졌다. 아직 철은 이르지만 이 정도 날씨라면 오동도의 동백꽃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안고 차를 여수의 바닷가로 돌렸다.
도시의 활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했지만 여수 수정동 일대의 달라진 면모는 세월을 흐름을 방증했다. 엑스포 때는 전시장의 볼거리에 눈이 갔지만 다시 찾은 여수의 목적지는 오동도였다. 여수 시내를 지나올 때 가로변의 동백나무에서 몇 송이 꽃을 보았지만 계절상 동백이 피어날 철은 아니었다. 오륙도로 향하는 방파제 위로 관광객들의 발길은 끝없이 이어졌고 그들 옆으로 기차 모양의 동백열차가 연신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
오동도로 들어서자 언제나 그랬듯 검푸른 동백 숲이 기자를 맞았다. 가지에는 꽃망울이 촘촘했고 듬성듬성 검붉은 꽃을 달고 있는 가지도 있었다. 울창한 동백 숲은 대낮인데도 어두컴컴했고 가지 사이로 멀리 수면에서 튕겨 나온 빛들이 산란했다.
12만㎡ 면적의 오동도에는 동백나무 등 200여종의 상록수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다. 나무들은 인접한 바다와 머리를 맞대고 바람의 결에 따라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이 중 동백나무는 3,000여그루에 달하는데 추위에 대한 감수성은 제각기 달라 늦가을부터 꽃을 피우는 것들도 있어 성급한 관광객의 눈요기를 시켜준다. 동백꽃 중 3분의1은 부지런히 개화해 2월을 장식하고 나머지 꽃들도 3월 말이 되면 낙화암 삼천궁녀처럼 가지에서 뛰어내려 봄볕에 부푼 오동도의 토양을 붉게 칠한다.
오동도를 뒤로하고 여수의 남단 금오산으로 향했다. 금오산의 명소 향일암은 전국 4대 관음 기도처 중의 한 곳으로 화엄사의 말사다.
백제 의자왕 4년(644년) 신라의 원효대사가 창건해 원통암이라 불리다가 고려 광종 9년(958년)에 윤필거사가 금오암으로 이름을 바꿨고 조선 숙종 41년(1715년)에는 인묵대사가 향일암이라고 다시 이름을 고쳤다.
향일암은 바다에 면한 암자답지 않게 가파른데 매표소 앞에서 왼편의 급경사 계단과 오른편의 완만한 비탈길 중 한 곳을 택할 수 있다. 계단으로 가면 숨은 가쁘지만 10분 만에 오를 수 있고 비탈길은 15분이 걸린다. 암자 입구에는 집채만 한 바위 사이로 만들어진 석문을 통과해야 한다. 향일암이라는 이름은 이곳에서 바라보는 일출이 아름다워 붙은 이름이다.
이곳에서는 해마다 12월31일에서 1월1일까지 향일암 일출제가 열려 해돋이를 보러 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율림리 산7번지.
여수는 맛집의 보고(寶庫)다. 호남지방의 음식이 맛깔진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인 만큼 여수에서는 조금만 신경을 쓰면 맛집 선택에 실패할 일이 없다. 전국적으로 가장 맛집이 많은 지방자치단체는 서울이지만 맛집의 비율이 가장 높은 지자체는 여수시라고 감히 장담할 만하다.
이번 여행에서 들른 맛집은 한일관으로 여수에는 본점과 엑스포점 두 곳이 있다. ‘본점이 더 낫다’는 입소문을 듣고 찾은 식당에는 아직 정오가 되기도 전에 손님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종목은 한정식이지만 해물 메뉴가 대부분으로 도미회·간장게장·전복 등이 나오는데 한 상 가득 음식이 나오는 것으로도 모자라 상을 두 차례 정도 갈아준다. 양에 관한 한 불만이 있을 수 없는 집이며 맛도 정갈하고 괜찮은 편이다. 가격은 1인당 2만4,000원짜리와 3만원짜리 두 가지가 있다. 전남 여수시 여문1로 43-9. (061)654-0091
/글·사진(여수)=우현석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