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2015년 옛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생긴 순환출자 문제에 대해 내렸던 판단을 2년 만에 180도 뒤집었다.
정부의 유권해석에 맞춰 합병 과정에서 삼성SDI가 보유한 옛 삼성물산의 지분 2.6%만 매각했던 삼성그룹은 공정위가 2년 만에 결정을 바꾸면서 내년 3·4분기까지 현 삼성물산 지분 404만주(5,276억원)를 추가로 매각해야 한다. 결정 번복으로 공정위의 법 집행 신뢰성과 예측 가능성이 크게 훼손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계는 “공정위가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고 하는데 정권이 바뀐 뒤 똑같은 말이 나오지 말란 법이 있느냐. 정책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반박했다.
공정위는 “두 차례에 걸친 전원회의 토의 결과 2015년 12월24일 발표한 ‘합병 관련 신규 순환출자 금지 제도 법 집행 가이드라인’을 변경하기로 결정했다”고 21일 밝혔다. 공정위의 이번 결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대기업 집단은 삼성그룹이다.가장 큰 쟁점은 순환출자 고리 내 소멸법인(옛 삼성물산)과 고리 밖 존속법인(제일모직)이 합병하는 경우 순환출자 고리가 ‘강화’되는 것인지, 아니면 새롭게 ‘형성’되는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이었다. 2015년 공정위는 ‘강화’됐다고 판단하고 합병에 따른 추가 출자분(2.6%·500만주)만큼만 매각하라고 했지만 이번에 결정을 번복했다. 공정위는 ‘형성’으로 판단하고 “삼성SDI가 보유한 삼성물산 전체 주식(4.7%·904만주) 모두를 매각했어야 한다”는 새로운 해석을 발표한 것이다.
이에 삼성그룹은 삼성SDI, 현 삼성물산과 관련된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해야 한다. 삼성에 세 가지 옵션이 있지만 삼성SDI가 보유한 현 삼성물산 주식 404만주(2.1%)를 처분하는 안이 유력하다. 금액이 적게 들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승계 문제에 영향이 없기 때문이다. 공정위의 순환출자 관련 가이드라인을 예규로 제정해 향후 석 달 안에 최종 확정할 계획이다. 예규가 확정된 후 6개월 안에 삼성그룹은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해결하지 않으면 공정위의 제재를 받을 수 있다. 삼성은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공식적으로는 “예규가 확정되면 법률 검토를 거쳐 대응하겠다”는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다만 공정위의 이번 결정으로 삼성SDI가 현 삼성물산의 지분 2.1% 모두 매각해도 삼성그룹 지배구조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분석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대주주 일가가 삼성그룹 지배구조에 정점에 있는 삼성물산 지분을 30% 이상 갖고 있어 지배구조를 흔들 수 없다는 얘기다. /강광우·신희철기자 press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