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리빌딩 파이낸스 2018]해외선 장수CEO 숱한데...지배구조 개선 앞세워 또 '코드 인사'

1부. 금융산업 위기 탈출구 없나 <중> 지속성장 방해하는 취약한 지배구조

지배구조법 시행 1년반도 안돼 CEO 끌어내리기 움직임

정권 입맛 맞는 사람 낙하산·줄대기 인사 다시 등장 우려

"국내서도 철저하게 실적으로 평가받는 시스템 만들어야"



지난달 국회에서 열린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방안 대토론회’에서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에는 개략적 내용을 담고 상세한 건 개별 금융사가 모범규준을 통해 내규를 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금융회사지배구조법이 지난해 8월 시행된 후 1년 반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자율적으로 바람직한 관행을 성립하는 게 효율적일뿐더러 해외에서도 이 같은 법률이 존재하는 사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입장은 180도 선회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최고경영자(CEO)가 본인의 연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과 유력한 승계 경쟁 후보가 없게 된 상황이 논란이 되고 있다”고 운을 띄우자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이 전위부대 마냥 지배구조제도 운영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금감원은 내년 1월 금융지주사의 CEO 승계 절차 등 지배구조에 대한 검사에 착수할 계획이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이 지난달부터 갑작스레 금융사 지배구조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면서 ‘관치’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당국에서는 특정 회사나 특정 개인을 염두에 두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 아무도 믿지 않는 분위기다. A금융사의 한 사외이사는 “처음부터 지배구조법을 만들 때 자세하게 규정해놓지 않고 이제 와서 건건이 지적하는 건 입맛에 맞는 사람을 CEO로 앉히겠다는 의도 아니냐”고 반문했다.


금융사 지배구조는 과거 신한 사태와 KB 사태 등의 시행착오를 거쳐 이제 막 자리를 잡는 단계에 들어섰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KB와 우리은행의 사외이사진이 철저하게 외부 개입을 차단하면서 올 하반기 KB금융 윤종규 회장이 연임에 성공했고 허인 국민은행장과 손태승 우리은행장이 내부 승진했다. 일부에서는 관치에서 벗어나 자율성이 인정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까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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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근 금융당국 수장들이 잇따라 내놓는 지배구조 관련 발언을 보니 결국 3년마다 CEO가 바뀌는 시절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자조 섞인 이야기가 들린다. 제도 시행이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이미 선임된 CEO를 몰아내려는 건 정권이 바뀐 뒤 입맛대로 인사하는 기존 관치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다시 예전처럼 낙하산 인사를 심고 전 정권 인사를 끌어내리는 악습이 되풀이된다면 기업의 영속성은 떨어지고 3년마다 줄 대기와 갈등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KB금융이 사실상 고문 역할인 부회장직을 신설해 친노 인사인 김정민 전 KB부동산신탁 사장을 내정한 건 그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금융사의 다른 관계자는 “법에 따라 규범화하고 충실히 지키고 있는데 (당국이나 정치권이) 뭔가 이루고자 하는 배경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해외의 경우 상법에 명시된 국내와 달리 CEO의 임기가 정해져 있지 않고 실적 부진이나 특정 사유가 발생하면 이사회에서 즉각 해임한다. 그러다 보니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10년 이상 장수하는 CEO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은 지난 2005년부터 13년째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씨티그룹의 마이클 코뱃, 뱅크오브아메리카의 브라이언 모이니핸, HSBC의 스튜어트 걸리버도 모두 5년 이상 수장을 맡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금융사도 독립성을 갖고 철저하게 실적으로 주주들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KB의 경우 윤종규 회장이 LIG손해보험과 현대증권을 인수해 포트폴리오를 안정적으로 구축하고 사상 최초 3조원 이상의 당기순이익을 올려 리딩금융그룹 자리를 탈환하면서 주주총회에서 99%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선임됐다. 하나금융도 2015년 9월 KEB하나은행이 출범한 후 2년 사이 실적과 건전성 모두 안정됐다. 당기순이익은 3·4분기 누적 기준 지난해 1조23억원에서 1조5,410억원으로 증가했고 자본 적정성을 나타내는 보통주 자본비율은 같은 기간 9.56%에서 12.74%로 개선돼 연말 목표를 훌쩍 넘어섰다. 건전성 측면에서도 고정이하여신비율(NPL·부실채권비율)은 1.19%에서 0.73%로 개선됐다. 국내 금융사의 한 CEO는 “경영성과에 대한 평가를 받고 책임을 지면 되지 않느냐”고 강조했다.

/황정원·김기혁기자 garden@sedaily.com

황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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