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미술계 최고의 인물은 단연 김환기(1913~1974)이다.
지난 4월12일 케이옥션 경매에서 김환기의 말년작 ‘고요(Tranquility) 5-Ⅳ-73 #310’이 국내 미술경매 사상 최고가인 65억5,000만원에 낙찰됐다. 이는 직전 최고가 기록인 약 63억3,000만원을 5개월 만에 2억원 이상 뛰어넘은 것이었다. 지난 2015년 10월 약 47억2,100만원으로 박수근의 ‘빨래터’ 기록을 깬 후 김환기는 자체 경신으로만 연거푸 5번 새 기록을 썼다. 올 한해 양대 경매회사인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에서 김환기 작품으로만 250억원(48점)어치가 거래됐다.
25일 서울경제신문이 예술경영지원센터(예경)가 운영하는 한국미술시장정보시스템(k-artmarket.kr)을 기반으로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김환기 작품의 20년간 경매 기록을 분석해 보니 과연 ‘미술시장의 삼성전자’라 부를 만큼 초우량주였다.
1998년 서울옥션 출범 이후 그간 국내 경매에 나온 김환기 작품은 총 572점 중 526점이 팔려 낙찰률 92%, 낙찰총액 1,492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같은 기간 미술경매 누적 총액인 1조3,845억원의 11%에 이르는 높은 비중이다.
‘미술계의 블루칩’ 김환기의 작품 거래는 한국 미술시장의 성장과 궤를 같이 했다. 5년 단위 거래 추이로 봤을 때 1998~2002년 16억5,300만원이던 김환기 낙찰총액은 경매거래 증가와 함께 2003~2007년 200억원, 2008~2012년 341억원으로 전체 시장에서 평균 7%대 점유율을 보였다. 지금처럼 수십억 원대 고가에 활발한 거래가 이뤄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단색화’의 국제적 인지도 상승시기인 2013년부터는 15.1%로 거래비중이 커졌고 최근 5년간 김환기로만 934억원 이상 거래될 정도로 열풍이 일었다. 한국 추상미술의 한 유파인 ‘단색화’를 태동시킨 주역으로 김환기가 꼽힌 까닭이다. 이에 단색화 거래가 절정에 오른 2015년에는 244억원, 지난해 413억원 규모의 김환기 작품이 거래됐다.
일례로 지난 2007년 11월 케이옥션에서 2억원에 팔린 점화 ‘15-Ⅶ-70 #181’는 지난해 9월 서울옥션에서 6억3,000만원에 낙찰돼 9년 만에 315% 상승세를 보였다. 또 지난 2013년 6월 서울옥션에서 6억2,000만원에 거래된 김환기의 검푸른색 점화 ‘4-Ⅵ-74 #334’는 작가가 타계 한달여 전에 완성한 것으로 올해 5월 서울옥션 홍콩경매에 다시 나와 4년 만에 약 15억원이 오른 21억원에 낙찰됐다.
최근의 잇단 신기록이 ‘점화(點畵)’에서 터지며 김환기가 뉴욕으로 옮겨가 추상을 완성하기까지 10년간 제작한 작품만 경매에서 237점 약 937억원 어치 거래됐다. 반면 중년기 작품으로 인물과 풍경의 간략한 형상이 담긴 ‘반추상’의 인기는 꾸준했으며 1937~1956년 서울서 활동할 시기 작품의 평균 낙찰가는 3억8,400만원, 파리시대(1956~59년) 작품은 평균 2억7,700만원에 팔린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 11월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는 간략한 선으로 산·강·달을 그린 1964년작 ‘모닝스타’가 39억원에 낙찰되면서 ‘점화’가 견인한 김환기 열풍에 ‘반추상’이 가세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이수령 예술경영지원센터 시각유통팀장은 “한 작가에 대한 시장 전체의 의존도가 평균 7%, 많게는 15%대라는 것은 김환기라는 작가가 한국 미술계에 기여한 바가 크다는 점을 보여준다”면서 “‘제2의 김환기’로 불릴 만한 작가들이 더 발굴될 때 더 건강하고 고른 시장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