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LG디스플레이의 중국 광저우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생산공장 건설 계획을 5개월 만에 승인했다. 다만 국민의 혈세가 들어간 국가핵심기술인 것을 감안해 소재·장비의 국산화율을 높이고 차기 투자는 국내에 하도록 하는 등의 조건을 달았다. 재계에서는 국내 투자환경 개선 없이 수출 승인을 볼모로 기업의 투자를 무리하게 이끌어냈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26일 산업통상자원부는 제17회 산업기술보호위원회를 열고 LG디스플레이의 TV용 OLED 패널 제조기술 수출을 조건부 승인하기로 의결했다고 밝혔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 7월25일 산업통상자원부 산업기술보호위원회에 중국 광저우에 8.5세대(2,200㎜×2,500㎜) OLED 패널 공장 설립을 골자로 하는 기술수출 승인심사를 요청한 바 있다. 5조원을 투자해 오는 2019년 2·4분기부터 연간 55인치 OLED 432만장을 양산할 수 있는 공장을 세우겠다는 게 LG디스플레이의 계획이었다. 총 자본금 2조6,000억원 중 70%를 LG디스플레이가 대고 나머지는 광저우시가 내는 방식이다.
LG디스플레이의 이 같은 투자 결정에는 주력인 액정표시장치(LCD) 시장에서 중국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는 만큼 선제적 투자로 대형 OLED를 신성장 동력으로 세우겠다는 노림수가 녹아있었다. 시장조사기관 IHS마켓에 따르면 2014년 1,715만장에 불과했던 중국 BOE의 LCD패널 출하량은 올해 기준 4,172만장까지 올라서 있다. 반면 LG디스플레이는 같은 기간 출하량이 5,255만장에서 5,097만장으로 뒷걸음질했다. 가격도 급락했다. 지난 6월 221달러였던 55인치 TV용 LCD패널의 평균 단가는 12월 185달러까지 급락했고 내년 3월에는 181달러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업체들은 LCD 추격에 그치지 않고 OLED 패널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까지 벌이면서 격차 좁히기에 나선 상황이다.
갈길 바쁜 LG디스플레이의 발목을 잡은 것은 정부였다. OLED가 국민의 혈세가 들어간 국가핵심기술인 만큼 기술유출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수출 승인을 차일피일 미룬 것. 9월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회장이 정부를 향해 “OLED로 가야 하는데 시간이 많지 않다. 허가를 받지 못한 경우를 대비한 ‘플랜B’는 사실상 없다”며 이례적인 작심 발언을 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정부가 수출을 승인하기는 했지만 조건이 세 가지 붙었다. 우선 정부는 현재 OLED 공장의 장비가 60%, 소재는 30%대인 국산화율을 각각 70%와 50%대로 높이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진다. 또 현재 LG디스플레이가 이미 발표한 파주 10.5세대 OLED 생산 라인 증설을 포함한 차기 투자를 국내에서 하도록 못 박았다. 기술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보안 점검 및 조직 강화 등도 조건에 포함됐다.
당장 재계에서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정부가 내건 국내 투자 조건이 앞뒤가 뒤바뀌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 관계자는 “투자는 기본적으로 기업의 경영 활동”이라면서 “글로벌 시장 변화에 따른 전략적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 게 상식인데 정부가 차기 투자를 국내에 하라고 못 박은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산업부 관계자는 “OLED 생산 라인은 국내나 해외의 투자환경이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며 “차분히 준비하면 향후 투자는 국내에 할 수 있다는 게 LG디스플레이의 답변”이라고 말했다.
/세종=김상훈기자 한재영기자 ksh25t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