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3㎞ 북쪽에 있는 인재교육(HR) 소프트웨어 회사 ‘애피컬(Appical)’. 로테르담 지역 내 공과대학교를 졸업하고 기획담당자로 2년째 근무중인 컬트 르트겝(26) 씨의 출퇴근 시간은 때에 따라 다르다.
네덜란드 노사협의인 ‘바세나르 협약’에 따라 주 38시간의 총 근무시간만 채우면 된다. 서울경제신문 취재진이 애피컬을 찾은 날 그는 9시에 출근해 오후 4시에 퇴근했다.
르트겝 씨는 고객사가 요청해 온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 프로그램의 큰 방향을 두고 팀원들과 회의를 한뒤 일찍 회사 문을 나섰다. 회사에서 지원하는 소프트웨어 개발 교육을 받기 위해서다. 비용을 회사에서 부담하는 만큼 그는 교육기간이 끝난 후 3년 간은 회사를 그만두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애피컬의 직원 교육이 인재 유출이 아닌 회사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이유다.
그는 “업무 자율성이 높고 직원의 생활을 존중하는 기업의 문화가 나와 잘 맞는다고 느꼈다”며 “원하는 교육을 받도록 회사에서 지원하는 점도 매력적이었다”고 입사 배경을 설명했다. 애피컬은 전체 직원은 40명으로 기업의 규모는 작지만, 직원 맞춤형 교육 지원과 자유로운 휴가로 청년 구직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기업이다.
애피컬은 휴가 사용도 자유롭다. 휴가 계획을 미리 회사에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 연간 주어지는 기본 유급휴가 25일과 무급휴가 30일을 활용해 아프리카로 장기 여행을 떠난 직원도 있다. 해당 직원의 업무는 세세하게 나뉘어 다른 직원들에게 배분된다.
로이 테렌스트라(30) 애피컬 최고경영자(CEO)는 “나는 보스(boss)이기 전에 회사의 목표를 함께 논의하는 동료이기 때문에 직원들의 의사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회사 제도에 즉각 반영한다”며 “유연한 문화야말로 중소기업과 노동자가 서로 상생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네덜란드에서는 대학원 진학 등 연구인력으로 빠지는 경우를 제외하고 대학교 졸업자의 70% 이상이 애피컬 같은 중소기업에 취직해 바로 사회 생활을 시작한다. 직원 존중과 상생의 기업문화가 정착된 덕분에 청년들은 중소기업 입사를 꺼리지 않는다.
올해 12월 기준 네덜란드의 실업률은 4.4%로 유럽에서도 낮은 편에 속한다. 1980년대 후반부터 일찍이 실업 문제에 맞닥뜨렸던 네덜란드가 30년간 해결책을 고민하고 개선해 온 결과다. 특히 청년과 기업을 연결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대학과 기업의 협력이 유기적으로 이뤄져 왔다. 이에 맞춰 정부의 지원도 뒷받침됐다.
대학과 기업의 대표적인 협력은 현장실습으로 나타난다. 르트겝 씨는 대학교의 소개로 6개월 간 인턴생활을 한 후 정직원으로 전환돼 애피컬에 입사한 케이스다.
네덜란드 대학생은 반드시 3~6개월 간 두세번의 현장실습을 거쳐야 졸업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대학교와 중소기업 관계자는 1년에 2~3차례씩 교류하며 관계를 맺어 나간다. 현장실습은 무급으로 진행되거나 월 500유로(약 62만원)의 적은 월급이 지급되지만, 네덜란드 정부가 대학생들에게 교통비나 병원비 등을 지원하기 때문에 청년들이 생활하는 데 어려움은 크지 않다.
대학과 기업이 함께 연구·개발(R&D) 프로젝트에 참여해 해당 업무에 필요한 청년을 채용하면 기업의 법인세를 인하해주는 정책도 시행 중이다. 테렌스트라 CEO는 “‘소프트웨어 디벨로퍼’라는 프로젝트를 근처 대학과 맡아 10명의 청년을 단기 고용했고 이 덕분에 세금이 줄어들었다”며 “회사 지출이 줄어든 만큼 직원들의 교육 비용으로 투자할 재원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중소기업에 대한 인식을 악화시키는 기업들은 채용을 늘릴 수 없도록 노동자권리보호제도가 잘 마련돼있는 것도 특징이다. 헤이그에서 기자와 만난 마리오 반 미에를로 네덜란드중소기업협회(MKB) 부장은 “유급휴가와 근무시간, 최저시급 등 기본적인 노동자권리를 지키지 못하는 기업들은 직원 채용을 늘릴 수 없다”며 “법적으로 노동자 권리를 보호하니 한계기업들이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사라지고 중소기업 인식이 개선될 수 있었다”고 전했다.
한계기업이 하나둘 사라지면서 중소기업 직원들의 월 임금도 2,000~2,500유로(약 255만~319만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미에를로 MKB 부장은 “하이네켄이나 필립스 등 대기업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일 수는 있지만 임금 인상률이나 승진이 경직적”이라며 “우수한 강소기업들은 성과에 따라 임금 인상과 승진 폭이 다양하기 때문에 고성과자인 경우 매년 6~7% 씩 임금이 오르는 경우도 많아 대기업보다 월급을 많이 받는 직원들도 많다”고 말했다.
/암스테르담·헤이그=백주연기자 nice89@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