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애플 배터리 게이트’를 지켜보노라면 8년 전 상황이 ‘데자뷰’처럼 떠오른다. 지난 2010년 소비자 불만에 대응하기 위한 애플의 내부 대응 매뉴얼이 외신을 통해 유출되면서 논란이 일파만파로 번진 적이 있다. 당시 아이폰4에서 손으로 쥐는 방식에 따라 안테나 수신감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데스 그립(Death Grip)’ 현상이 나타났는데, 애플은 이를 인지하고도 서비스를 개선하려는 노력 대신 소비자 불만을 외면했다.
매뉴얼에 따르면 애플은 데스 그립 현상이 아이폰4 이전 모델인 아이폰3GS에서부터 지속됐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애플은 직원들로 하여금 소비자들에게 ‘아무 문제 없다’는 점을 주지시키도록 하고, 손으로 아이폰을 잡지 않았을 때도 수신 감도가 떨어지는 현상을 제외하면 절대 고객서비스를 제공해서는 안 된다고 못박았다. 분노한 소비자들은 애플을 상대로 집단 소송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애플은 결국 홈페이지를 통해 “문제가 된 제품은 디스플레이 문제”라고 해명하며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소비자들은 애플의 해명을 석연치 않게 받아들이며 “지나치게 오만한 태도”라고 맹비난을 퍼부었다.
8여년이 지난 지금 애플의 태도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데스 그립 현상은 제조 공정이나 설계 과정에서 실수일 수 있다지만 이번엔 고의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기기 성능을 저하시켰다. 업데이트 전후에도 관련 사실을 알리지도 않았다. 집단소송 움직임이 가시화되자 예전처럼 부랴부랴 홈페이지에 ‘배터리 교체 비용을 인하하겠다’는 취지의 공지만 올려놓은 채 고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애플이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것 같다”는 혹평이 나올 법하다.
애플이 소비자를 상대로 계속해서 이런 ‘갑질’을 할 수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속된 말로 ‘애플충’ ‘앱등이’ ‘애플빠’라고 불리는 충성 고객들에 대한 자만에서 비롯된 건 아닐까. 개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불공정한 판매 및 애프터서비스 정책에도 아이폰은 지난해에만 2억2,300만대가 팔릴 정도로 두터운 마니아층을 갖췄다. 하지만 국내에서만 18만명 이상이 집단소송 참여 의사를 밝혔을 정도로 이번 배터리 게이트에 대한 소비자들의 분노가 크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애플도 이제는 겸손을 배워야 할 때다. /minizza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