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30여년 나이 차 넘은 최상의 파트너 … 환상호흡 보러 오세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윌킨슨 부인役 최정원·빌리役 천우진·에릭 테일러]

1년 반동안 빌리役 연습한 아역배우

든든히 받쳐준 성인배우 앙상블 빛나

5월7일까지 신도림 디큐브아트센터서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에서 윌킨슨 부인 역을 맡은 배우 최정원(가운데)과 빌리 역을 맡은 아역 배우 에릭 테일러(왼쪽)·천우진 군이 인터뷰 중 포즈를 취했다. /권욱기자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에서 윌킨슨 부인 역을 맡은 배우 최정원(가운데)과 빌리 역을 맡은 아역 배우 에릭 테일러(왼쪽)·천우진 군이 인터뷰 중 포즈를 취했다. /권욱기자


공연 직전 연습이 한창인 서울 신도림 디큐브아트센터의 연습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에서 발레 선생 윌킨슨 부인 역을 맡은 배우 최정원(49)과 주인공 빌리 천우진(14)·에릭 테일러(11) 군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가득하다. “경주 오빠(남경주) 이후 최고의 파트너들”이라며 최정원이 농을 치자 웃음보가 터진 것이다.

지난 연말 개막해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짙은 호소력은 1년 6개월간 혹독한 훈련 속에 감동의 성장 드라마를 쓴 다섯 명의 빌리, 그리고 이들을 든든히 받쳐주는 성인 배우들의 앙상블에서 나온다. 그중 최정원이 연기하는 윌킨슨은 빌리의 숨겨진 재능을 처음으로 발견해준 스승이자, 빌리의 가슴 속 슬픔과 천진난만함을 끌어 내주고, 안아주는 엄마, 언제나 그를 응원해주는 친구다. 무대 밖에서도 윌킨슨 역의 최정원은 빌리 역을 맡은 5명의 아이들에게 선배이자, 스승, 동료 배우다.


지난 4일 공연을 앞두고 우진·에릭 군과 최정원 배우를 한 자리에서 만났다. 한달간의 공연 소감을 묻자 최정원이 대뜸 자랑을 늘어놓는다. “윌킨슨이 얼마나 특별한지 아세요. 상대역이 5명이나 돼요. 그것도 나이가 30세 이상 차이 나는 열정적인 배우들이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에서 윌킨슨 부인 역을 맡은 배우 최정원(가운데)와 빌리 역을 맡은 아역 배우 에릭 테일러(왼쪽)·천우진 군이 발레 동작을 선보이고 있다. /권욱기자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에서 윌킨슨 부인 역을 맡은 배우 최정원(가운데)와 빌리 역을 맡은 아역 배우 에릭 테일러(왼쪽)·천우진 군이 발레 동작을 선보이고 있다. /권욱기자


최정원은 “늘 골을 넣던 사람이지만 이번에는 빌리가 골을 넣게 잘 어시스트 해주는 게 내 임무”라며 “나이는 어리지만 열정은 못지않은 다섯 빌리를 상대 배우로 연기하다 보니 더 집중하고 귀를 열게 되고 더 몰입하게 되는 것 같아 즐겁다”며 웃었다.

‘빌리 엘리어트’는 행간의 여백이 많은 작품이다. 빌리를 향한 윌킨슨의 마음 역시 관객들이 직접 상상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장치를 심어놨다. 가령 왕립발레단에 보낸 윌킨슨의 추천서는 빌리에 대한 윌킨슨의 애정을 여실히 드러내는 대목이다.

“윌킨슨은 아버지와 형이 참여하고 있는 광산 노동자 파업부터 빌리 가족의 재정상황, 특별한 재능 그 모든 걸 무려 다섯 장의 편지에 열정적으로 적어 보내요. ‘이 아이를 놓치면 당신들이 후회할 거다’ ‘이 아이가 꿈을 이루지 못하면 이 암울한 영국에는 미래가 없다’ 그렇게 쓰는 거죠. 말로 표현하지 않지만 빌리와 윌킨슨은 서로에 대한 마음을 다 알아요. ‘행운을 빈다’는 두 사람의 마지막 인사에 이 모든 감정이 응축돼 있는 거죠.”

다섯 빌리를 대하는 최정원의 실제 감정도 이와 다르지 않다. “우리 딸 수아가 이 나이일 때는 너무 바빠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없었어요. 빌리를 보면서 우리 딸이 이렇게 컸겠구나 생각해보는 거죠. 제 상대 배우 빌리가 정말 자랑스러운 건 실수를 해도 그 실수를 오히려 감동적인 장면으로 만들어낸다는 거예요. 그런 순발력을 보고 있다 보면 2년 동안 이 아이들이 얼마나 성실하고 진지하게 연습했는지 알 수 있어요.”

우진 군과 에릭 군이 “가끔 무대에서 몰입하지 못하면 연습 때 못했던 동작을 무대에서도 실수할까 걱정하게 된다”고 토로하자 최정원은 “막이 오른 후에는 그냥 우진이, 에릭이 아닌 빌리가 돼 즐기는 게 좋다”며 “실수를 하더라도 그 실수는 빌리가 한 거지 우진이나 에릭이 한 게 아니”라고 조언했다. 그러자 두 아이의 눈이 커진다. 우진 군은 “우와”를 연발하고 에릭 군은 “다음 공연 때 꼭 그렇게 생각해야겠다”며 박수를 쳤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에서 배우 최정원(가운데)이 연기하는 윌킨슨 부인은 빌리의 스승이자, 엄마, 친구 같은 존재다. 서울 신도림 디큐브아트센터에서 빌리 역의 아역 배우 에릭 타일러(왼쪽)·천우진 군이 함께 포즈를 취했다. /권욱기자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에서 배우 최정원(가운데)이 연기하는 윌킨슨 부인은 빌리의 스승이자, 엄마, 친구 같은 존재다. 서울 신도림 디큐브아트센터에서 빌리 역의 아역 배우 에릭 타일러(왼쪽)·천우진 군이 함께 포즈를 취했다. /권욱기자


개막을 두 달여 앞두고 탭댄스를 추며 줄넘기하는 장면을 연습하다 심각한 다리 부상을 당했던 최정원 역시 마음고생을 했지만 빌리들 덕분에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부상 당시에는 절망스러웠는데 오히려 그 시간 동안 대본을 제대로 공부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한때 발레리나를 꿈꾸다가 꿈을 접게 된 윌킨슨의 아픔을 계속 생각하게 됐고 그로 인해 마음을 닫았던 윌킨슨이 빌리를 통해 마음을 열고 희망도 품을 수 있게 된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됐어요. 저에겐 전화위복이 된 거죠.”


아역 배우들이 다수 등장하지만 작품에는 속어와 흡연 장면이 다수 포함돼 있다. 일부 관객들은 이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볼 수 있게 장면이나 대사를 순화해달라는 요청도 상당하다. 그러나 최정원의 생각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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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1980년대 영국 탄광촌, 하류 계층에 속해 있던 아이의 성장기예요. 빌리는 욕을 해도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담배가 나쁜 것이지도 모르는 노동자 계층 속에서 자라난 아이지만 그 세계를 탈피해 다른 꿈을 꾸게 되는 거죠. 욕설을 지우고 담배를 빼는 순간 이 작품의 철학이 송두리째 사라지는 거예요. 저 역시 딸을 키우지만 공연을 통해 세상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고 싶어요. 물론 아이들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흡연 장면에서는 ‘진해거담제’라는 담배처럼 보이는 약제를 쓰고 있으니 안심해도 됩니다.”

본인은 인정하지 않지만 에릭은 공연 스태프 모두가 인정하는 ‘뼈 속까지 빌리’다. “빌리는 한 계단 한 계단 성장하는 아이”라고 소개하는 에릭 군의 표현대로, 그 역시 오디션에 탈락했다가 뒤늦게 다섯번째 빌리로 합류하며 압축적인 훈련을 소화했고 평소 자신 없어 하던 연기와 춤, 노래 등 모든 분야를 빠르게 습득했다.

탭댄스 신동으로 통했던 우진 군 역시 연기부터 발레 동작까지 완벽하게 소화하며 관객들의 극찬을 받고 있다. 가장 감동적인 드라마는 5명의 아역배우들이 보여준 성장스토리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정원은 “성인 배우였다면 1년 이상 한 배역만을 위해 이 모든 걸 배우고 연습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오죽하면 오리지널 연출가 스티븐 달드리가 ‘빌리는 마치 어린아이가 햄릿을 연기하며 마라톤 풀코스를 뛰는 것 같은 캐릭터’라고 했겠느냐”고 반문했다.

어느덧 공연 개막 후 한 달 이상이 흘렀지만 두 빌리는 마냥 행복하다고 했다. 혹독한 훈련이 끝났고 연습 때처럼 선생님들의 “폭풍 지적을 받는 횟수가 줄었기 때문”이다.

“빌리를 꿈꾸는 친구들에겐 아무 말도 해주지 않을래요. 알고 하면 절대 도전할 수 없거든요. 저 역시 이렇게 힘든 줄 알았으면 꿈도 꾸지 않았을 거예요.”(천우진)

“빌리 엘리어트는 꿈이 없는 사람에게 꿈을 심어주는 작품이에요. 저도 이 작품을 통해 꿈이 생겼거든요. 저는 무대에 오르니 더 잘하게 된 것 같은데 그게 다 ‘뜨거운 박수’ 덕분인 거 같아요. 박수소리를 듣고 나면 ‘대박이네. 잘 해야겠다’ 이런 용기가 생겨요.”(에릭 테일러)

두 아이의 이야기를 들은 최정원이 한 마디 거든다. “다섯 빌리는 언젠가 지킬앤하이드의 지킬도 되고, 그리스의 대니 주코도 되겠죠. 그때 전 아이들의 상대역이 될 순 없겠지만 빌리 할머니 역의 박정자 선생님처럼 그때도 한 무대에 올라 주연 배우들을 받쳐줄 수 있겠죠.(웃음)” 5월7일까지 신도림 디큐브아트센터

서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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