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하남의 미사리 강변에는 30만㎡의 ‘나무 고아원’이라는 특별한 공간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는 대형 공사장이나 재개발 단지 등에서 병들어 버려지거나 갈 곳 잃은 나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단풍나무·은행나무 등 40여종, 1만3,000여그루 가운데 외과수술을 받아 인공수피를 붙인 나무가 흔할 정도로 저마다 아픈 상처와 사연을 갖고 있다. 여기서 남다른 보살핌과 재활치료를 받아 인근 한강의 가로수로 변신하거나 녹지대 조경수로 새롭게 태어난다고 한다.
흔히 숲속의 딱따구리는 나무 의사로 불린다. 길고 단단한 부리로 나무 속 벌레를 가장 많이 잡아먹고 병든 나무를 치유해준다는 것이다. 어쩌면 자연이야말로 가장 유능한 치료사일지 모를 일이다. 우리 조상들도 마을의 크고 오래된 나무를 당산목이나 신목(神木)이라고 해서 숭배하는 문화를 갖고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소나무를 으뜸으로 치고 궁궐에서 직접 관리할 만큼 각별한 신경을 쏟기도 했다. 정조는 솔나방의 공격으로 소나무가 병들자 백성들에게 경각심을 주겠다며 송충이를 입에 넣고 씹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몇 해 전에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500년짜리 느티나무가 교통사고를 당해 가지가 뿌려져 바닥에 쓰러지는 불상사가 있었다. 주민들은 이후 불길한 사고가 잇따르자 1,000만원을 들여 부러진 나무의 상처를 치료해주고 고사 위기에 빠진 당산목을 구하려고 큰 굿판을 벌이기도 했다. 법원에서는 보험사에 대해 나무 치료비를 배상하라며 2,000만원의 지급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이제는 우리 주변에서 나무들이 대대적인 외과수술을 받거나 주변 토양에 천엽부엽토를 부어 건강식을 대접받는 것도 익숙한 풍경이 됐을 정도다.
국내에도 조만간 나무치료 전담 의사제가 도입된다는 소식이다. 수목의 피해를 진단, 처방하고 그 피해를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등 수목 진료를 담당하는 역할을 맡는다는 것이다. 산림청은 나무의사와 수목치료기술자처럼 국가에서 공식 자격을 부여해 나무병원을 차리도록 규정을 강화할 방침이다. 오랜 세월 동안 나무가 그랬듯이 이제는 우리가 나무를 보살펴주고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배워야 할 때다.
/정상범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