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이순신의 위기관리 리더십

임기철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장





420년 전 조선의 겨울 바다는 차디찬 설움에 북받쳐 울고 있었다. 임진년(壬辰年)에 시작된 전쟁에서 패한 왜군 장수 고니시 유키나가는 자국으로 돌아갈 후퇴로를 열어달라고 이순신 장군에게 간청하던 터였다. 이순신에게 1598년 무술년(戊戌年) 11월의 노량해전은 비장한 전투였다. 평소에 “적이 퇴각하는 날 죽어 유감 될 일을 없애겠다”고 맹세했기에 더욱 그랬다. 이 때문에 장군의 죽음에 대해서는 훗날 ‘자살설’까지 나돌았다. ‘근세 일본사’에는 “이순신은 이기고 죽었으며 죽고 나서도 이겼다”라고 써 있다.


국운이 달린 전쟁이라는 대전환기에 조정은 국토와 백성을 포기했고 백성의 신뢰는 임금을 떠났다. 유일한 희망은 바다에서 들려오는 이순신의 승전보였다. 장군은 제해권을 장악함으로써 전쟁을 승리로 바꿨다. 새로운 시대를 열려면 위기를 극복함과 아울러 희망찬 미래를 구상해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이른바 전환의 리더십이다. 위기는 변수가 아닌 상수이다. 암환자들이 오랜 투병 끝에 내리는 결론은 ‘암과 친구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위기를 적으로만 취급해서는 해결의 묘책이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김훈 작가는 ‘칼의 노래’에서 이순신 장군의 통찰적 심경을 ‘적(敵)의 적으로서의 나’로 표현한다. 적의 입장에서 숙고하고 전략을 마련할 때 23전 23승도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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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불문하고 어느 국가나 조직이든 위기를 겪으면서 강해졌고 훗날에 대비하는 잠재력을 배양함으로써 지속적인 변신의 원동력으로 삼았다. 변화의 계기는 외부에서 오지만 변화의 동력은 내부에서 일으켜야 한다. 다시 말해 구성원들에게 변화의 동기를 부여해 각자의 내면에 잠자고 있던 긍정의 힘을 발휘하도록 하는 능력이 바로 위기를 관리하는 리더십이다. 위기관리 리더십은 실천형 혁신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성과로 이어진다. 세종에게 집현전 학사들과 장영실이 있었다면 충무공에게는 거북선을 설계한 군관 나대용이 있었다. 이순신은 혁신의 리더였고 거북선은 전쟁의 승패를 가른 혁신의 승부수였던 것이다. 임진왜란 발발 하루 전인 1592년 4월12일 거북선의 성능시험과 진수를 마친 것은 국운을 외롭게 짊어진 혁신가의 숙명과도 같았다.

굳이 제4차 산업혁명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지금이 대전환기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를 지탱해온 틀과 행동 양식, 가치관을 새 시대에 맞게 바꿔야 할 때다. 수명이 다한 정책과 실행 방식도 내려놓아야 한다. 한때 성공의 보루였을지언정 이제는 한계에 이른 낡은 시스템과 구조의 늪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역사로부터 통찰력을 구하고 마주친 현실 뒤의 어둠 속에서 혜안을 길어 올려야 미래에 대응할 책략을 얻을 수 있다. 여기에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한 실천적 혁신이 따를 때 국운 융성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 열린다. 현장과 실행에 강한 위기관리와 혁신 리더십의 상징과도 같은 세종과 충무공이 든든히 버티고 있는 서울 광화문을 바라보며 힘찬 새해 희망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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