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뇌물 상납’ 사건에서 지난 4일 ‘호위 무사’로 불리는 유영하 변호사를 재선임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법조계 주변에서는 ‘국정농단’ 사건에 비해 특활비 뇌물 사건은 국정 수행과 거리가 먼 개인 비리로 정치적으로 치명적인 사안인 만큼 “이 혐의만큼은 벗어야 한다”는 박 전 대통령의 절박감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기존 국정농단 사건에서는 재판 ‘보이콧’을 유지하지만 추가 기소된 특활비 뇌물 사건에서는 적극적인 방어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유 변호사를 다시 선임한 것도 그 작업의 하나라는 것이다.
두 사건은 모두 ‘뇌물’ 혐의지만 박 전 대통령 입장에서 사안의 무게감은 완전히 다르다. 국정농단 사건은 ‘비선 실세’ 혐의를 받고 있는 최순실씨의 사익추구와 박 전 대통령의 공모 행위에, 특활비 뇌물 사건은 박 전 대통령의 개인적인 유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농단 사건에 대해서는 국정 수행의 일환이었고 최씨가 벌인 불법적인 일들을 모른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박 전 대통령은 구속 기간 연장이 결정되고, 유죄가 선고될 경우 중형이 예상되자 ‘정치적 희생양’이라는 프레임을 내세우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풀이돼 왔다.
박 전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16일 변호인 전원 사퇴 카드를 꺼내며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보복은 제게서 마침표가 찍어졌으면 한다”고 언급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국정 농단’ 사건에서는 단 한 번도 재판에 나오지 않았다. 재판부가 5명의 국선변호인을 선정했지만, 일체의 접견 신청도 거부하고 있다.
반면 특활비 뇌물 사건은 다르다.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지지층 등에 자신이 ‘희생양’이라는 인식을 각인시키기가 상대적으로 더 어렵다. 검찰이 박 전 대통령의 특활비 사용처로 지목한 삼성동 사저 관리·수리비, 기치료 및 주사 비용, ‘문고리 3인방’ 격려금 등은 국정 수행과는 거리가 멀다.
대통령 재임 당시 국가 돈을 ‘쌈짓돈’으로 사용했다는 의혹은 정치적인 재기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국정농단 사건에서 “사익을 추구한 적이 없다”고 강조해 온 박 전 대통령으로서는 유죄가 인정될 경우 정당성을 잃게 된다. 또 이번 사건은 국정농단 사건과 달리 공소사실이 박 전 대통령과 직접 맞닿아 있고, 관련자들이 박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았던 하급자란 점에서 적극적인 방어권 행사가 필요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단적인 예로 박 전 대통령에게 특활비를 제공한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 박 전 대통령과 특활비 상납을 공모한 이재만·안봉근·정호성 비서관 등 최측근 3명은 박 전 대통령에 불리한 진술이나 법정 증언을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 박 전 대통령이 유 변호사를 재선임한 데는 여전히 재판에 불출석하더라도 법정 공방이 벌어지면 국선변호인과 달리 방어권을 적절히 행사할 수 있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풀이돼 향후 대응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