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안은 노동계의 거센 반발과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상황에서 개혁을 강행하는 것은 좌파 사민당의 슈뢰더 전 총리에게 곧 지지세력과의 결별을 의미했다. 실제로 그에게 실망한 당원들 상당수가 당을 떠났다. 결국 슈뢰더 전 총리는 하르츠 개혁이 시행된 첫해인 2005년 실시된 선거에서 정권을 내놓아야 했다. 그렇지만 하르츠 개혁은 2000년대 중반 이후 독일 노동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는 수치로도 증명된다. 특히 2005년 무려 11.2%에 달했던 실업률은 2017년 3.8%로 떨어졌고 같은 해 65.5%였던 고용률은 2016년 74.7%로 높아졌다.
우리나라 노사정이 2015년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냈을 무렵 국내에는 이른바 하르츠 개혁 광풍이 불었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는 물론 노사, 전문가들 상당수가 하르츠 개혁에 답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9·15 사회적 대타협을 ‘한국판 하르츠 개혁’의 시발점 정도로 여겼다. 하지만 대타협은 그로부터 반년도 채 지나지 않은 2016년 1월 파기됐다. 정부가 양대지침 도입을 추진하자 한국노총이 대타협 파기를 선언한 것이다. 한국형 하르츠 개혁이 수포로 돌아가자 국내에서는 ‘미니 잡’ 양산 등의 하르츠 개혁 부작용도 집중 조명됐다.
그렇다면 하르츠 개혁은 한국이 더 이상 벤치마킹하기 어려운 모델일까. 전문가들의 대답은 ‘노(no)’였다. 이정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선(先) 노동시장 유연화, 후(後) 일자리 질 개선이라는 하르츠 개혁의 수순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하르츠 개혁으로 노동시장이 유연화되다 보니 일자리가 많이 늘었지만 그중 상당수가 근로조건이 열악한 것이었던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이후 독일 정부가 많은 노력을 기울여 열악한 부분을 보강함으로써 일자리 질은 개선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경기가 안 좋을 때는 처음부터 노동시장을 경직시켜서 일자리가 창출되지 않게 하는 것보다는 시장 동향을 봐가며 유연화한 다음 고용이 증가하면 정부가 일자리의 질 개선을 위해 지원할 필요가 있다”며 “양대지침을 폐기한 현 정부에서 이뤄지기 쉽진 않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저성과자 퇴출을 기반으로 하는 해고 유연화도 추진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노사정이 대화를 재개해 임금 및 근로시간도 유연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최영기 한림대 교수는 “지금의 정부가 ‘쉬운 해고’ 개혁에 나설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본다”며 “정부는 할 수 없는 것을 하려 하지 말고 임금 유연화 등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노사정의 한 축인 노동계도 해고가 아닌 임금 유연화 논의에는 나설 여지가 있다”고 언급했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4차 산업혁명으로 앞으로 일하는 방식이 크게 변할 것”이라며 “일하는 방식에 대한 노동법적 규제, 특히 근로시간 등에 관한 규제는 유연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이 노사정 8자 회의, 신(新)8자 회의 등 새로운 사회적 대화의 틀을 제시한 데 대해 “체계를 변화시켜서라도 사회적 신뢰 자산을 쌓아가는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면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사회적 대화를 대통령이나 정부와 노동계 간 교섭으로 변질시킬까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세종=임지훈기자 jhl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