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로터리] 장발장 사면 없는 사회를 꿈꾸며

이찬희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이찬희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지난해 12월29일 문재인 대통령은 새 정부 출범 후 첫 특별사면을 발표했다. 소시지 열일곱 개와 과자 한 봉지 등 8,900원어치를 훔쳤다가 징역 8개월을 선고받은 경우를 포함해 서민 중심의 사면이 이뤄져 ‘장발장 사면’으로 불린다. 사회적 갈등 치유 및 국민 통합이라는 취지에서 단행됐다고 한다.

정치인이 딱 한 명 포함된 것을 두고 옥에 티라는 비판도 있다. 법이나 정치의 생명은 일관성과 형평성에 있다. 정치인·기업인 배제를 원칙으로 했다는데 누구나 수긍할 만한 특별한 사유 없이 예외를 인정했다는 점이 아쉽다. 하지만 생계형 절도 사범, 이주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에게 중점을 뒀다는 점에서 이번 사면은 국민들에게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국회는 민주주의 원칙인 다수결에 따라 법률을 만든다. 법원은 판사의 재량이 남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법과 형량을 정하는 기준에 따라 판결한다. 국가원수인 대통령이라고 해도 이러한 입법부와 사법부의 권한을 침해할 수 없다. 이것이 법치주의의 근본 원칙이다. 이처럼 국가기관 간의 상호 견제와 균형으로 국민의 기본권이 보장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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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법에도 눈물이 있어야 한다. 입법이나 사법의 잘못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원칙에 따른 획일적인 법 적용으로 발생하는 억울함을 풀어줄 필요가 있다. 그래서 법치주의의 예외를 인정한 것이 사면권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해산물 식당의 수족관에서 킹크랩 두 마리를 훔치거나 분실한 휴대폰을 가지고 갔다가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이른바 장발장들에 대한 이번 사면은 국민의 지지를 받을 만하다.

아쉬운 것은 장발장이 없으면 장발장 사면도 필요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이웃이 너무나 많다. 그들이 배고픔 때문에 더 이상 양심의 울타리 안에 머물지 못하고 울타리를 넘으면 장발장이 된다. 사면 대상에 생계형 범죄자가 포함된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 어려운 이웃을 돕는 시스템이 많이 부족하다는 증거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을 통한 나눔문화 확산과 사회공헌을 목표로 지난 2000년부터 소년소녀 가장 및 저소득층, 순직 경찰관과 소방관 유족 등에 대한 후원 사업을 진행해왔다. 2017년 12월 말 현재 누적인원 1만명 이상의 변호사가 약 96억3,600만원을 후원했다. 새해에는 그 규모와 대상을 더욱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추운 겨울이다. 눈길을 돌려 주변의 이웃을 살펴보자. 내가 먹는 한 끼 식사의 반찬 하나만 줄여도 한 끼를 해결하는 어려운 이웃이 있다. 불필요한 소비를 줄여 필요한 이웃에게 나눠주면 장발장이 없어진다. 장발장 없는 따뜻한 사회의 시민으로 살고 싶다.

이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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