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이젠 미래를 이야기하자] 압력밥솥형 교육으론 인재 못키워...성적 높지만 경쟁력 꼴찌수준

<4>20년전 산업체제에 맞춰진 한국 교육

선진국은 게임친화 학습 등으로 창의력·문제해결 중점 교육하는데

"한국은 하루 15시간 학교·학원서 필요 없는 지식 위해 낭비" 지적

학생 선발·교과과정 구성 자율화...4차혁명 시대 맞는 인재 육성해야



“성적은 우수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다. 세상에서 가장 경쟁적이면서 고통스러운 교육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다.” 프랑스 언론 ‘르몽드’가 지난 2010년 교육특집 기사에서 한국의 교육에 대해 내린 결론이다.

학생을 불행하게 만들고 세상살이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 악명 높은 한국 교육 시스템에 대한 지적은 끊이지 않았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한국 학생들은 사라져가는 산업체제의 시스템에 맞게 짜인 어긋난 교육 시스템을 고수하고 있다”며 “그들은 하루 15시간 동안 학교나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도 않을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의 교육기고가 어맨다 리플리는 한국의 교육을 ‘압력밥솥’에 비유한다. 단 한 번의 시험으로 10년 넘게 공부한 것을 평가하는 한국의 현실을 비꼰 것이다. 그는 “한국을 방문해 만난 사람 가운데 그 누구도 한국의 교육제도를 칭송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국 교육의 문제는 한마디로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교육’이라고 압축할 수 있다. 교육에서 행복을 찾지 못하니 학업성적은 우수하지만 정작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는 길러내지 못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2015에서 한국은 52개 참여국 가운데 2~5위로 최상위권에 올랐다. 반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은 교육 부문 경쟁력 37위에 그쳐 종합순위(29위)에도 한참 못 미쳤다. 우리의 교육경쟁력은 2013년을 제외하고 최근 6년간 30위권에 머물러 있다.

이종욱 한국교총 초등교사회장은 “현재 한국의 교육은 ‘지금 참고 열심히 공부하면 나중에 행복해진다’는 고진감래형”이라며 “한마디 불평불만 없이 묵묵히 공부해 좋은 성적을 내면 일류 대학에 갈 수 있는 현 입시제도는 시키는 일을 군말 없이 열심히 하는 성실한 사람을 뽑는 산업화 시대 기업의 인재상을 전제로 한다”고 꼬집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재상은 고진감래형과는 정반대다. 2016년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 보고서에 따르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재는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술이나 전문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복합문제 해결능력’과 ‘인지능력’ ‘컴퓨터·IT를 비롯한 과학·기술·공학 분야의 지식’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창의적 인재 육성은커녕 과학에 대한 흥미유발이라는 기본적 역할조차 해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2016년 발표된 과학기술이해도 조사 결과를 보면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은 2010년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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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에서는 창의력과 문제해결력을 지닌 인재를 기르려는 다양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최근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거꾸로교육(플립 러닝 Flipped Learning)’이 대표적이다. 거꾸로교육은 온라인 강의로 선행학습을 한 뒤 오프라인 강의에서 교수와의 토론을 통해 깊이 있는 사고를 하는 ‘역진행 수업방식’을 가리킨다. 교수의 강의를 받아 적는 기존 교육방식을 탈피한 것이다. 일방적 지식 전달에 그치는 한국의 중고등 교육 시스템과는 대조적이다.

개별 학교 차원에서도 많은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미국의 퀘스트투런이라는 중고등학교는 기존 교과 구별을 없애고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게임친화 학습’을 도입했다. 게임 속 캐릭터의 임무를 수행하며 자연스레 지식과 문제해결력을 기르는 교육법이다. 피드몬트중학교는 공통과목을 아예 없애고 학생이 좋아하는 과목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미술, 공예, 글쓰기, 영화·영상 등 사회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과목이 개설돼 있다. 인성교육에 중점을 둔 영국 버밍엄대 부설 중학교, 학년이나 반 구분 없이 같은 관심사를 가진 아이끼리 모여 공부하는 네덜란드의 스티브잡스학교(초등학교), 강의실 없이 온라인을 통한 토론식 수업으로 실전적인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는 미네르바대 등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재를 기르는 선도 학교로 각광받는 곳이다.

이런 다양한 실험은 각 학교들이 설립 이념에 따라 자유롭게 신입생을 선발하고 교과과정을 구성할 수 있는 교육풍토가 바탕이 됐기에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은 지적이다. 안종배 국제미래학회 원장(한세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은 “한국의 미래 교육이 지식전달에서 역량 함양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대학수학능력시험 폐지, 학교의 자율선발 보장, 순위 매기기 평가에서 역량 중심 평가로의 전환, 인문계고와 특성화고 칸막이 폐지, 교과과정의 자율화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인재 육성을 위해서는 교과서부터 뜯어고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현재의 초중고 교과서는 특정 학문을 축약한 것으로 마치 모든 국민을 학자로 길러내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특히 수학이 심각하다”며 “그러다 보니 수포자(수학 포기자)가 생기고 똑똑한 아이들이 수학 하나 때문에 이과를 포기하는 현상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초등학교부터 프로그래밍을 가르치는 등 현실과 접목된 과목을 개설해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수학·과학 등 고차원적 학문은 대학에서 가르치는 방식으로 교과과정을 개편해야 한다”며 “대학 입시도 이에 맞게 재구조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능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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